저자 : 최중경

출판사 : 한경


책 소개 :

전 세계 각국이 치열한 외교 로비전을 벌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대한민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세력 균형 속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치열한 로비전을 펼쳐야 할 우리지만, 대사관을 제외한 그 어떤 로비 활동도 없어 오히려 미국 주류사회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그 결과가 눈앞에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 인식 문제에서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일본에 기울어지고 있는 미국의 태도 역시 일본의 상상을 초월한 외교 로비 때문이다. 
저자는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를 통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대한민국의 외교 난맥상을 낱낱이 해부한다. 그리고 차갑고 냉철한 외교 전략의 재수립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20세기 구한말의 치욕스런 역사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21세기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기를 꿈꾼다면 무엇보다 ‘외교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저자 최중경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이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필리핀 대사,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 지식경제부 (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역임하고 퇴임 뒤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이 글은 저자가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 방문연구위원 신분으로 3년간 워싱턴에 머무르며 파악한 대한민국의 현주소에 대한 세세한 기록들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에 만족해 스스로 초강대국이라도 된 듯 자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낱낱이 파헤치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


1장 2% 부족한 대한민국 외교 
국내 정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외교의 한계 
실제보다 과장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까?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감성 외교도 중요한 외교 수단이다 

2장 흔들리는 한미 관계 
한국은 플레이어인가, 칩인가? 
워싱턴에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QUAD에서 제외된 한국: 군사와 안보는 다르다 
미국의 작심 발언에 주목하라 
미국 의회 연설에 더 이상 목매지 말자 
미국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수여하자 
한미 산업협력을 보다 강화하자 

3장 오버슈팅 한중 관계 
너무 빨리 일어선 중국 
중국에 필요 이상 밀착하지 말라 
기축통화를 넘보는 중국: 신(新) 브레튼우즈 전쟁 

4장 반목하는 한일 관계 
아베노믹스의 실체 
일본의 치밀한 한국 따돌리기 
일본은 같이 지낼 만한 나라인가? 

5장 통일은 긴 호흡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가치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세계 7위의 군사 대국이라는 허구 
통일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남북 산업협력은 왜 중요한가? 
북한을 보는 관점 다양화해야 
최선의 시나리오: 점진적 평화 통일 

6장 수박 겉핥기식 미국 공부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월가의 탐욕인가? 주택정책의 실패인가?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 
점령(Takeover): 제도 안의 운동권 
이념 어젠다를 편식하는 한국 
미국을 잘못 베끼는 한국 
녹색에너지 투자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는 미국을 벤치마킹하라 

7장 변화를 위한 제언 
싱크탱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국내 정치의 국제화가 시급하다 
언론의 외교 안보 취재 역량을 높여라 
디테일 중시 문화를 정착시키자 
역사교육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알파고와 IT 코리아: 실속 없는 독창성 

8장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 
전략적 모호성의 한계 
동북아 안보 전략이 없는 한국 
과대 선전은 국제 부메랑이 된다 
환율은 국가 대전략의 중요한 축이다 
국가 간 산업협력의 구심점을 만들자 
국가 대전략 사례 1: 전략의 부재가 가져온 카르타고의 멸망 
국가 대전략 사례 2: 전쟁의 신(神) 나폴레옹의 몰락 
국가 대전략 사례 3: 고구려와 조선은 패망을 자초했다 

9장 Reset 
Reset 1: 한미 관계의 이상 징후 
Reset 2: 20세기 조선과 21세기의 대한민국 
Reset 3: 미일 관계의 부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Reset 4: 한미 관계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자 

맺음말: 국가 지배구조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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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휘갈김 :


2016년에 발간된 책이기 때문에, 2016년 후반에 국정농단 사태를 겪고 2017년에 조기대선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에 들어서 한반도 긴장 완화 기미가 보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미 유효하지 않은 분석도 상당수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야, 대한민국, 정신 차려. 너네 뭐 대단히 강대국이라도 된 것 같지? 개뿔도 없어. 겸손하게 행동하고 한미관계나 단다히 챙겨, 아니면 큰 코 다친다' 라는 논조인데 이는 한편으로 현실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치우친 면도 있다. 게다가 감정과 직관에 근거한 대한민국의 전략 (혹은 전략의 부재) 를 비판하면서도 저자 본인 또한 감성 과다 상태가 중간중간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귀기울여 들을 조언들은 꽤 있는 편. 미래의 큰 그림을 새로이 그린다기보다는, 과거의 과오에서 배운다, 는 면에서는 도움이 될 법한 안보 서적. 개인적으로는 - 대강 속독할 부분들은 빠르게 넘기되, 필요한 부분을 발췌독하는 편이 잘 어울렸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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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췌 :


1장


의미 없는 행사에 목을 매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을 빛나게 해서 국민들이 흡족해 하는 것을 외교 활동의 우선 순위로 두기 때문이다. <상서대전尙書大傳>을 보면 '의승보필'이라 하여 왕의 전후좌우에 보살피는 신하가 있었다고 한다. 앞에는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임금의 명령을 따르는 승丞, 왼쪽에는 정책을 논하는 보輔, 오른쪽에는 왕의 잘못을 간언하는 필弼이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쩐지 의승만 남고 보필은 사라진 듯 한데, 진정한 참모라면 보필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도 대한민국이 '강대국으로부터 대접받는 나라'라는 환상에서 깨어나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외교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화려한 쇼보다는 실질적인 국익과 관련해 어떤 대화가 오가고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치열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중견국가에 불과하다. 때문에 지역 내 국가들이 모여 뭔가 논의하고 있다면 일단 참여해 논의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기본적인 접근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일본이 TPP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는 더욱 긴장하고 발을 들여놓았어야 했다. 일본 재무장 이슈와 TPP를 연계하는 정책적 상상력도 발휘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뒤늦게 TPP 문을 두드렸을 때 미국 USTR의 반응이 지극히 사무적이고 냉랭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 현재는 미국도 트럼프 집권 하에 TPP에서 발을 뺀 상황이라 TPP 이슈는 outdated 하지만, 그래도 point taken.)


한국은 아직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우선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므로 세계 모든 국가가 고객이다. 그럼에도 주요국과의 협상이 끝나면 꼭 상대방보다 우월한 전략을 구사해서 유리한 협상 결과가 나왔다는 무용담이 협상 담당 공무원의 실명과 함께 언론에 등장한다. (중략) 앞으로는 국제회의 협상 결과를 보도할 때 자화자찬식 무용담을 배제하도록 공론화해야 한다.


외교 방식에 대해 심사숙고할 때가 되었다. 틀에 박힌 방식만 고집할 게 아니라 뭔가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를 발굴해 감성 외교에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 필자는 박근혜의 과거 강점과 약점을 예로 드는데, 박정부의 상상력 부족은 2018년 현재 문재인 정부에서 많이 보완된 부분이라고 본다. 문통의 2017년 첫 방미 컨텐츠를 참고할 것.)


2장


"한국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player인가 chip인가?"


그 힘이 과거와 같지는 않아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를 이끌고 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특히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기축통화국으로서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질 경우 즉시 불을 끌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워싱턴을 너무 홀대한다. 돈도 시간도 투자하지 않는다.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강대국의 친구도 아니다. 강대국의 정책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강대국의 정책 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우리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민간단체, 특히 경제단체의 역할이 요구된다. (중략) 무엇보다도 워싱턴의 정책 시장엣 일자리를 유지하고 늘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워싱턴에 투자할 때는 긴 안목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정권의 성격이나 싱크탱크의 성향에 관계 없이 긴 안목을 갖고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최근 한국이 한중 관계를 의식해 미국과의 군사협력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 2016년 기준 상황) 북한과 조중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한, 중국은 군사적으로 우리와 반대쪽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우리의 전작권은 미군에게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군사 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국제법 질서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쉬고 있는 휴전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국은 같은 편이 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중략) 사드 배치에 관해 전략적 모호성 운운하며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중국 측이 기대감을 갖도록 한 것이 결국 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 측의 실망감과 분노를 부른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인 미국의 정책을 정밀하게 분석해 미국과 손 잡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분야갸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고도 정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nutcracker 신세에서 탈출하는 비결이다. 미국은 돈이 되는 기술을 많이 갖고 있지만, 그동안 보수 수준이 높은 금융업을 선두로 한 다양한 서비스 산업으로 인재들이 집중되었다. 때문에 제조업 분야는 인재 확보 측면에서, 또 현장 기술 유지 발전 측면에서 한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으로 신속히 진출하는 것이 한미 양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나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나 꼭 필요한 것이니만큼 국가 정책 차워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한국에게는 중국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 구조상 한국이 언제까지나 중국의 우호적인 협력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반도체, 가전제품, 자동차, 조선 등 거의 우리 주력 산업 전반에 걸쳐 중국과 진검 승부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3장


너무 빨리 일어선 중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한국, 재무장의 길로 나선 일본... 동북아 삼국지가 복잡 미묘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략) 우리는 지난 50년의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한국이 강국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 착각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4장


미국은 그동안 중국의 군사력 팽창을 경계해 일본에 국방력을 강화하길 종용했다. 그러나 일본의 지난 정권들은 미온적인 자세를 취해 왔는데, 아베 수상이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베 수상은 일본 재무장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경제 활성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서 탄생한 것이 바로 아베노믹스의 골간인 엔화 무한정 공급정책이다.


아베노믹스는 경제 논리로 탄생한 게 아니라 동북아 안보체제 변경을 구축하는 미국 안보 전략의 부산물이라는 인식을 갖고 보아야 비로소 한국의 갈 길이 보인다. 일본을 비난하기 전에 미국의 정책 방향이 한국에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위안부 문제 등 역시 인식 문제는 계속 추궁하되, 역사 인식 문제만으로 일본을 등져봤자 미국의 반응은 냉랭할 뿐이다. 따라서 일본과 반목하는 모습에서 탈피해 한미일 삼각 공조의 틀 안에서 한국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전하려 노력애야 한다.


미국은 한국의 혈맹일 뿐 아니라 일본의 맹방이기도 하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가 한미 혈맹의 정서적 가칭 매달려 한미 관계의 소중함을 확고한 현실 체제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동안, 그 틈을 타고 일본이 미국에 물심양면으로 성의를 보인 결과이다. 일본은 재무장 논의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한국을 따돌릴 궁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로 한국의 감정을 격하게 만든 것도 일본의 치밀한 계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안부 문제로 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면 한미일이 모이는 자리를 만드는 데에 있어 미국도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중국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인느 한국의 정책 역시 일본이 한국을 따돌리기 쉽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5장


북한의 고위층이 숙청되고 처형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이지만, 3대째 세습이 이루어진 북한은 과거의 봉건 왕조와 비슷한 성격의 국가라고 보아야 한다. 일반 민중들이 볼 때는 오히려 지도자의 권위가 크게 느껴지고 고위층의 불행이 카타르시스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가치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북한이 곧 붕괴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우리 위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혁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북한이 시장 경제를 조심스럽게 도입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북한을 무조건 배척하고 몰아붙이는 정책이 해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6장


이념은 결국 '어떻게 생산해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한 기본 원칙이다. 정치인들은 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시대에 맞는 최선의 이념을 도출하고 실천함으로써 국민 생활을 편안케 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이 이념을 가르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정치의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정의를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 보수주의자는 파쇼 독재 집단이자 산업화 세력으로, 진보주의자는 자유주의자 집단이자 민주화 세력으로 정의되는 진영 논리 내지는 상대방 격하 논리에서 탈피하는 게 첫걸음일 것이다.


천국을 만들려는 시도가 반대로 지옥을 탄생시킨다 (by Karl Raimund Popper) 정책 수립자의 의도는 분명 약자를 보호한다는 선한 의도였는데 정책의 결과는 왜 참담할까 인간의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었을 때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특히 복지제도는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기관차와도 같다.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고 설사 힘들게 멈춰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충격이 크기 때문에 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치밀한 고민 없이 도입된 복지제도들이 계층간 세대간 반목과 갈등을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7장


싱크탱크의 순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각종 현안에 대하여 다양하고 싶도 깊은 토론을 통해 입장을 미리 정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어설픈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된다. 집권당은 집권당대로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게 되고, 야당이 공백 기간을 거쳐 재집권하는 경우에는 정책의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순기능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문계 대학 졸업생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싱크탱크는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인문학의 명맥을 유지케 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유능한 퇴직 공무원들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공무원 재직시 부당한 압력이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연구기관들은 경제 이슈에 많이 치우쳐 있으며, 이름이 있는 경우 국책 연구기관이거나 특정 분야에 국한한 민간 단체 소속이어서 국가 전략이나 정치 이념까지 아우르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국가대전략 (Grand Strategy) 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싱크탱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안보는 목표이고 외교, 군사는 안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외교부 산하에 외교안보연구원이 있는 것은 수단인 외교가 목표인 안보를 거느리는 이상한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외교와 군사 전문가는 있어도 안보 전문가는 없다는 방증이다. 그렇기에 사드 배치와 같은 이슈가 있을 때 매끄러운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는 '협상 불가능한 군사 보안 이슈 (non-negotiable confidential military issue)'인데 '협상 가능한 공개적 외교 이슈 (negotiable open diplomatic issue)'로 잘못 정의한 데에서 모든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의 차이는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게 디테일과 실리를 중시하는 유럽 문화와 개관과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화풍, 화약 무기, 미적분 등)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을 지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세한 질문을 만들고 그 답을 찾는 연구 개발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안보전략 역시 이웃나라의 역사와 외교전략, 국방전략, 무기체계와 기술 수준에 관한 세세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분석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상식과 직관에 바탕을 둔 전략이 디테일과 집중 분석에 입극해 수립된 전략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백제가 망한 이유와 똑같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단편적 사실과 시간적 순서만 외우는 역사 공부가 무슨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학생의 암기력이 우수한지 테스트하는 것 외에는 단돈 1원의 가치도 없는 교육이 역사교육이라는 엄청난 이름 하에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브스쿨을 고안한 저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의 IT 산업은 '서비스는 공짜'라고 인지하는 한국 사회의 후진성과 기술금융제도의 부족으로 아직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박이 터진 포켓몬스터 게임의 증강현실 기술의 원조가 한국 IT 산업임에도 사업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보아도 IT 산업을 둘러싼 정책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미래가 있을 것이다.


9장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힘의 이동 상황을 정확히 읽고 최종 선택을 유보하면서 실리를 추구한 외교정책이었다. 반면, 현재 외교 당국이 주장하는 '미중 양국의 러브콜'이라는 발상은 대한민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낭만적인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사실 광해군이 추진한 외교정책은 중립이라기보단느 이중외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세력 판도가 결졍되지 않은 과도기에 시력 판도가 결정되기를 기다린 것이지, 명과 후금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는 사실상 주한 미군의 전투력에 의존해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17세기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추진할 수 있었던 동북아시아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워싱턴포스트 1면에 미 육군 헬기가 해군 함정에 착륙하는 사진이 게재됐는데, 이는 태평양사령부의 작전 개념이 해군 위주의 원거리 정밀 타격전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 그렇다면 한반도의 군사 전략적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미8군 사령부가 서울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한 것도 이런 흐름과 관련지으면 자여스러운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곧바로 자동 개입하게 되는 소위 인계철선 (tripwire) 효과를 피하고자 하는 미국의 속내라고 볼 수 있다. (=> Offshore balancing by John Mearshei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