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선 휘갈김, 후 정보.

 

<거래의 기술>은 1987년 트럼프가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출간되었고, <불구가 된 미국>은 2015년 그가 제45대 미합중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시점이나 저술 목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책은 (내가 보기에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후자에서 간략하게 등장하는 트럼프의 대표적 사업에 대한 기술이 전자에 좀 더 자세히 되어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내가 이 2권을 구입한 이유도 동일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불안불안했지만 '에이, 그래도 설마 트럼프가 되겠어' 라는 희망적 예측을 하고 있었고, 미 대선 결과 집계 당일에 실시간 개표 결과에 심박수가 뛰었으며, 트럼프의 승리가 사실상 확정됐을 때 개탄의 소리들을 내뱉었다.

 

그 첫 충격이 가시고 나서, 며칠 후에, 마지못한 기분으로 투덜거리면서 이 책들을 구입했다. '아오씨, 어쨌든 네놈이 대빵 쎈 나라 대장이 됐으니까 내 알기는 알아야겠지...' 라는 심경으로. (그나마 소장하고 싶지는 않아서 e북으로 구매했음-_-)

 

그리고, 이 책들을 다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구나. 그렇게 많은 미 대선 관련 기사와 분석들을 읽고 동영상을 스크랩하면서도 단 한번도 주력 후보 중 한 명인 도널드 트럼프의 '진짜 소리, 진짜 공약, 진짜 정책'이 뭔지 진정 들여다보지 않았구나. 그의 믿을 수 없을만치 높은 지지율을 그저 '일부 기득권층의 경제적 이기주의' 혹은 '교육받지 못한 저소득 백인 남성의 반발' 정도로만 치부했구나.

 

그의 파급력이란, 그렇게 축소해서 볼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들이 이 책들에 들어있다. 특히 대선을 염두에 두고 출간판 <불구가 된 미국>에. 파격적으로 직설적인 그의 말투와 성정 때문에 트럼프의 구두 연설은 늘 막말 논란로 귀결되기 일쑤고, 이에 대비하여 힐러리를 지지하는 오바마 부부의 유창하고 호소력 있는 연설들은 환호를 받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형식들을 걷어내고 나서 보면, 트럼프가 뭘 주장하고 또 그 주장이 왜 대중에게 먹혔을지를 보다 담백하게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그가 당선되었다고 해서, 달랑 그의 자서전 혹은 공약집 격인 책 두어 권 읽었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트럼프 지지자가 되어버린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심지어 연설에 비해서는 군더더기 없고 옹골찬 그의 책마저 군데군데 그의 독선과 오만함을 꽤나 많이 반영하고 있다.

 

다만, 내가, 우리가, 전 세계가 '트럼프라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다는 자각과 반성을 하는 거다.

 

아울러, 트럼프의 언어가 얼마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지를 보기 위해서, 이 책들은 번역판이 아니라 영어 원문으로 보는 것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문장을 음미하면서 볼 책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패스하는 걸로. (반면에, 버니 샌더스의 저서는 문장을 충실히 즐기고 싶어서 꼭 원문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음!)

 

이 책, 그리고 저자인 트럼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목차의 일부, 그리고 주요 문구 발췌를 첨부한다. 미시적인 정책들은 차치하고, 아래 내용과 어조만 봐도, 아마 책 전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싶다.

 

 

 

 

<불구가 된 미국>

 

- 다시 이기기 위해

- '공평무사'한 우리의 정치언론

- 이민, 훌륭한 벽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

- 외교정책, 평화를 위한 싸움

- 교육, 낙제점

- 에너지 논쟁, 심한 호들갑

- 의료보험, 만병의 근원

- 여전히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 좋은 사람들도 이길 수 있다

- 미국인이라 다행이다

(중략)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부분 발췌)

 

마침내 나는 '말만 늘어놓고 행동은 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더이상 필요 업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경영하는 법을 아는 똑똑한 기업가가 필요하다. 더이상 정치적인 미사여구는 필요없다. 상식이 필요하다. "고장나지 않았다면 고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고장이 났다면 이제는 말을 그만하고 고쳐야 한다.

나는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안다.

 

나는 기존의 일반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지, 혹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핵심으로 나아간다.

나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기를 바라는 외교관이 아니다.

 

"제 생각에 미국이 안은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공정성에 연연한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실 저는 정치적 공정성에 매달릴 시간이 없어요. 솔직히 말하건대 우리나라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큰 난관에 처해 있어요. 우리는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중국에게 지고 있어요. 멕시코에게는 교역과 국경 문제에서 지고 있어요. 그리고 러시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에게도 지고 있어요."

 

나는 공격을 개의치 않는다. 언론이 나를 활용하듯이 나는 주목 받기 위해 언론을 활용한다. 일단 주목을 받으면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중략) 그래서 나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가끔 별난 발언들을 하면서 언론이 원하는 시청자와 독자의 관심을 끌어주었다.

 

우리나라로 밀려드는 불법이민의 홍수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불법이민은 우리나라를 죽이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대선 출정 연설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누구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중략) 현재의 이민 상황이 위험한 문제임을 인정하고 해결할 길을 찾기보다,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나를 비판하는 것이 훨씬 쉽다. (중략) 불법이민은 중단되어야 한다. 국경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진짜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이민체계를 가진 유일한 나라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바로 '바보'다. (중략) 나의 이민정책은 대단히 단순하다. 우리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오는 일을 쉽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범죄자와 다른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힘을 쓸 것이며, 그 말이 진심임을 알면 세상의 대접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중동과 다른 지역에서 나약하기 짝이 없는 군사정책을 취했기 때문이다.

 

내 정치는 '희망의 정치'가 아니라, 나와 같은 강인한 기업가만 제시할 수 있는 '현실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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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28 20:21 신고 조아하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세계에서 정치는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인 사람보다는 쉬운 공약을 내세우는 사람이 이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사실 제3세계 도와주는게 실패하는 것도 맥락이 비슷하죠. 실제 제3세계 문제는 복잡해서 기부나 봉사활동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사람들이 단순히 기부, 봉사활동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니까 안되는 거잖아요. How to read 시리즈라고 세계에 큰 영향을 준 유명한 철학자, 정치가들을 원전 그대로 번역해서 해석한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들 중에 히틀러 책이 제~일 이해하기 쉬웠어요. 물론 히틀러의 사상은 악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사람들은 쉬운것을 좋아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 배자몽 2016.11.29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럼프 저서들을 완독하고 거의 바로 이어서 언어학자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개정판을 읽었는데, 대중을 사로잡은 세력 (해당 책에서는 주로 보수를 일컬음) 이 어떤 언어를 사용해서 생각을 프레이밍을 해왔는지를 설명하더라구요. 등장하는 '보수의 언어' 사례마다 트럼프가 적용되어서 정말 흥미로웠어요! 말씀하신대로, 결국 '논리나 합리'보다도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우며, 흡수하기에 쉬운' 그런 말들이 세력을 얻는다는... 그런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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