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벚꽃의 기억

Posted by 배자몽 일상잡기록 : 2017. 4. 28. 15:12

 

 

바쁘다.

지인짜, 정말, 매우 엄청 바쁘다.

4월 초중순에 꽃구경은 대체 어떻게 다닌 거지?

 

그리하여, 마지막 꽃구경 이후로는 사진 정리나 블로그 업데이트를 할 틈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덧 봄보다는 여름이 가까워지는 걸 느끼고서 이 봄꽃 사진들을 빨리 털어버리고 싶었다. 블로그는 별 것도 아닌데도 은근히 품이 든단 말이야. 혹은 요즘에 기록력이 딸려서 그런가.

 

170414

용산가족공원

 

 

 

 

 

 

엄마와 내가 매우 좋아하는, 국립박물관 그리고 이에 연결되어 있는 용산가족공원. 늘 그렇지만, 여기는 큰 마음 먹고 찾기보다는 우연히 들르게 되고, 날씨가 쨍하니 맑은 날보다는 이렇게 흐리고 비 오는 날 편안한 마음으로 찾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더 좋은 곳이었다.

 

맑은 날, 따사로운 날,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내 기억 속 가장 행복한 날들 중에는 비 내리는 날이 많다. (물론, 옷과 신발이 젖고 추적추적 춥고 짐도 무겁고... 귀찮은 기억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별 기대 없이 마음이 느슨해지는 탓일까.

 

이 날도 원래는 - 봄꽃 끝물, 당분간 없을 마지막 평일 휴무 - 관악산에 꽃 사진을 찍으러 간다는 둥 계획은 잔뜩 있었는데, 비도 오고 오후의 일정도 꼬이고 이래저래 들뜬 마음이 가라앉은 날이었다. 원래 계획, 애당초 욕심 다 버리고, 뭐 어디든 가자. 비를 맞고 거닐어도 좋고, 아니면 그냥 어딘가 카페에 들어가도 좋고, 한나절 내내가 아니라 좀 짧게 만났다가 각자 볼 일 보러 가도 되고, 경 긔 엇더하리잇고...

 

그렇게 마음 속을, 머리 속을 한 차례 비워내고 씻어낸 자리에 이 한적하고 싱그럽고 촉촉한 풍경이 한가득 들어와주었다.

 

비가 온다고 그냥 약속을 취소했더라면 못 왔을,

계획에 집착해 관악산을 고집했더라면 못 봤을,

동선과 일정에 어긋난다고 툴툴댔더라면 못 봤을,

 

이런 풍경.

사진만 봐도 심호흡이 절로 나오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날씨가 쾌청한 주말에는 나들이객이 제법 많은 국립박물관이지만, 비 오는 금요일 낮에는 이토록이나 한적하다. 특히나 비바람과 비바람 사이에 잠깐 보슬비가 내리던 때라서 이 드넓은 풍경이 마치 우리 것만 같았던 시간.

 

 

 

 

 

 

이럴 때마다 늘 고민한다.

 

내 풍경 사진에 우연히 찍힌 저들의 사진이 참 잘 나왔는데, 이걸 실례와 오해를 무릅쓰고 가서 '저, 혹시...' 사진 보내드릴까냐고 물어봐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마저도 오지랖 긁어 부스럼인 걸까. 입장 바꿔보면 난 우연히 누군가가 나의, 우리의 이런 사진을 찍어서 준다고 하면 매우 고마울 것 같은데 말이야.

 

온갖 상상을 다 했지. 사진은 카톡이나 문자로 보내야겠지, 남자 말고 여자분한테 보낸다면 괜찮지 않으려나, 풍경 찍는 와중에 우연히 이렇게 찍혔는데 혹시 신경 쓰이시면 지우고 새로 찍겠다고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뭐, 나 혼자 자잘하게 고민하는 사이에 저 연인들은 호수 반대편으로 걸어가버렸다. 혹시라도 이 블로그를 우연히 보게 될 일은 없겠죠? 편집본으로 사진 건네드리고 싶은 마음, 유효합니다.

 

 

 

 

 

 

그들이 걸어가버린 후에 새로이 찍은 거울호수 풍경 :)

 

 

 

 

 

 

청명한 공기를 느끼면서, 꽃길을 사브작 사브작.

 

 

 

 

 

 

봄비가 내리는가봄.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물풍경.

 

 

 

 

 

 

이렇게 드넓고 한적한 곳에서 꽃산책을 할 수 있는데, 번잡스러운 여의도 벚꽃축제를 탐할 이유가 하등 뭐 있겠나. 게다가 벚꽃 혼자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풀과 꽃들 사이에서 함께 하는 듯한 풍경이어서 더더욱 좋았다.

 

 

 

 

 

 

어린 시절 쿠키통 뚜껑에서 보고 상상해왔던 그런 푸른 동산 풍경 그대로, 라고 엄마가 표현했던. 맑은 날에는 그 나름대로의 화사한 매력이 있겠지만, 이렇게 빗방울과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제법 운치가 있어.

 

 

 

 

 

 

저 너머, 우리가 걸어온 벚꽃길을 돌아보며...

 

 

 

 

 

 

올해 벚꽃은 이렇게 기억에 남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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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28 19:20 고잉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라면 저런 사진 보내주신다고 하면 완전 감사할 것 같아요. 삼각대를 들고 다니지 않는 한 항상 커플 사진은 멋대가리(?) 없는 셀카뿐이라... 완전 감사한 재능기부죠 ㅋㅋㅋ

    • 배자몽 2017.04.28 2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 잠깐 오지랖 결례를 각오하더라도 한번 말이나 걸어볼걸 그랬나요... 저 분들이 우연히라도 이 블로그에 흘러들어올 가능성은 없겠죠? =.=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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