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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0 [살바토레페라가모] 써틸(Subtil) - 영원한 내 가을 향수. 4




생각해보면 -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이 바닥(?)에
발 들여놓았을 때에는 향수 애호가로 시작했다.

원래 후각이 좀 예민한 편인 데다가
돈 없고, 꾸밀 줄 모르는 학생이
그나마 만만하게 덤빌 법한 분야가 바로
향수 (물론 미니어쳐) 이기 때문.

그러다가 점점 분야가 넓어짐에 따라서
향수장까지 규모 있게 유지할 수가 없어서
향수 포션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서 이제는 쓰는 것만 쓰는 편이지만,
어쨌든 여전히 향기의 매력, 그리고 위력을 믿는다.

그리고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강렬한 후각의 감성 자극력을.



그토록 향수에 열광하며 다양한 제품들을 사용하고,
또 그 향들을 다 뇌에 각인시키고 다니던 시절에도
내가 나름 본처 삼았던 제품들이 몇가지 있지.

봄 : [안나수이] 수이 러브 EDT
여름 : [엘리자베스아덴] 그린티 EDP
가을 : [살바토레페라가모] 써틸 EDP
겨울 : [겔랑] 랑스땅 EDP





이게 바로 나의 영원한 가을 향수 -

살바토레 페라가모 써틸 팜므.

몇년 전에 100mL 대용량으로 획득해서 오래오래 잘 썼는데
그거 비워내고 나서는 딱히 재구매를 않고 있었지.
가끔 그립기는 했지만, 뭐 다른 향수들도 많아서.

그런데 꼬몽이가 이거 판다고 했을 때 무심코 찜해놓고
최근에 그녀가 서울 방문했을 때 드디어 받아봤다.
(물론, 그때까지는 내가 이거 사기로 한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 복작거리는 종로 갈매기살 집에서 (...)
이 매끈한 페라가모를 받아봤을 때 -
순간 나 혼자 몰래 찡하고 울컥했잖아.

잊은 것 같아도
둔감해진 것 같아도
여전히 향기의 추억 연상력이란
백마디의 말보다도 강력하더라.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이 향기는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써틸의 이 향은 나에게는 영원히 2003년도 가을과 초겨울.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그대와 함께 했던 그리운 시간.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냥 이 향과 함께 영원히 기억 날 몇몇 순간들이 있어.
그날의 날씨, 내가 입었던 옷들까지 다 기억나.
정말 덤블도어가 밀봉한 기억을 펜시브에 풀어놓듯이,
어쩜 그렇게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다 떠오르는지.





오랜만이야, 옛 친구.
간혹 사람들은 네 향이 플라워 바이 겐조와 비슷하다는데 -
당치도 않은 소리.

이 깊고 고혹적이면서도
부드럽고 달콤한 향을
어찌 다른 향수의 서브로 분류하랴.

게다가 겐조에 비해서 페라가모가 결단코
급이 낮은 디자이너도 아닐진대 말이지.
이건 뭐, 남편 계급 따라서 서열 정해지는
군인 사옥에서의 마누라들 관계도 아니고.




페라가모 특유의 이 배배 꼬인 라인마저 나에게는 매력 그 자체.
그런데 희한하게 같은 모양에 색만 투명한 페라가모 팜므 클래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향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매혹이라는 건 대체가 안 되는 거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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