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첫 여름 여행
@ 전주
작년에 우연히 들러보고 너무 좋았던 전주라서
이번에는 일부러 하루를 통째로 빼서 갔는데
숙소가 영 눈에 안 차서 첫발부터 아쉬웠다.
지역색도 없이 그저 낙후된 지방 도시 호텔.
다음에 전주를 간다면 (갈 일이 있을지...)
그냥 웬만한 건 다 한옥마을에서 해결해야지.
도심 호텔 절대 비추! 한옥마을 민박이 낫다.
전주에서 비빔밥도, 제대로 된 한정식도
먹어보지 못한 게 그동안 계속 아쉬워서
이번에는 아예 여길 가겠노라 정해뒀다.
이 역시 타 블로그에서 보고 찜해둔 집이었지.
그렇다면 어느 누군가는 내 블로그를 보고
"오, 여기 꼭 가봐야겠다-" 생각을 하려나.
암튼, 좀 침울하게 시작한 전주 여행이
이 호남각에서의 맛난 식사 덕분에
다소 밝아질 수 있었기에 - 감사합니다.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려요.
구성과 가격대별로 여러 정식이 있는데
내가 시킨 건 한우 불고기 비빔밥 정식.
원래는 꼼꼼히 안 보고 바로 아래에 있는
"전주 비빔밥 정식"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문득 옆 테이블에 불고기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 아, 맞다!!! 불고기...
다행히도(?) 사람이 많아서 주문이 밀린 탓에
별 무리 없이 메뉴를 바꿀 수 있었다네;
워낙에 유명한 집이라서 정말 사람 많더라.
입구 북적거리는 테이블에 겨우 앉았는데,
미리 예약을 해서 방을 잡으면 좋을 듯.
일단 - 전주 입성을 기념하며.
전주의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모주는
이번에 처음 마셔봤는데, 이런 맛이구나.
달달하고 계피향이 나는 게 꽤 맛났지만
아쉽게도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아서 흠.
특히나 식사 반주용으로는 맛이 강하더라.
불고기도 비빔밥도 자체의 맛이 있어서
이럴 때에는 모주보다 청하류가 나을 듯.
그냥 맛만 보게 잔술로 주문해도 됐을 것을,
결국 많이 남아서 식사 끝나고 싸달라고 했네.
그래도 "여자들이 좋아하겠군" 싶은 맛이었어.
내가 깜빡할 뻔 했던 - 한우 불고기.
어따, 때깔 좋구나.
하나하나 입맛에 참 잘 맞던 반찬들.
심지어 평소에 즐겨 먹지 않는 잡채마저
기분 탓인지 이날 따라 유독 맛이 좋더라.
두부 새싹 샐러드는 아예 한 접시 추가했고.
그리하여 - 한상차림.
이렇게 시켜서 1인당 2만원 남짓.
푸짐한 데다가 가격마저 착하다.
1인당 25,000원 하던 부산 언양 불고기보다
이 쪽이 내용상으로도, 가격상으로도 승리.
놋불판이 고기를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한다.
고기 또한 만족만족.
보들보들 야들야들한데 씹는 맛도 있고,
양념도 지나치게 달지 않아서 좋아.
(언양 불고기는 내 입맛에 너무 달았음.)
전주비빔밥, 그리고 육회비빔밥.
2천원 추가하면 육회비빔밥으로 변경 가능.
내 입맛은 단연코 전주비빔밥 쪽이지만.
아, 오늘은 종일 먹기만 한 것 같네.
못다 마신 모주는 이렇게 포장.
너무 배가 불러서 전주 막걸리 골목은
애당초 마음 속에서 포기하고 있었다.
어차피 막걸리 안 좋아하기도 하고.
정갈하고 푸짐하고 맛깔나는 음식, 좋습디다.
나도 추천 받고 방문하게 된 집이지만
다시 남에게 기꺼이 추천할 수 있는 -
전주 호남각.
막걸리 골목을 구경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의외로 아는 게 없어서;
결국 우왕좌왕하다가 한옥마을 산책에 나섰다.
역시 전주는, 한옥마을이야.
게다가 선선한 여름밤 산책을 하던 와중에
담 넘어 국악 연주 소리가 들려오길래
기웃거려보니까 이런 멋진 야외 라이브를!
때마침 전주 대사습놀이 기간을 맞아서
국악방송에서 특집방송 야외 녹화를 한다네.
전주, 한옥, 여름밤에 참으로 잘 어울렸다.
숙소 때문에 이래저래 꼬였던 기분이
이제야 좀 여유로워지는 듯 하구나.
이 기분 그대로, 한옥마을 밤거리 산책.
밤에 보는 한옥마을 거리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왠지 발길을 끌던 - 교동다원.
몸도, 마음도, 시간도,
쉬어가는 곳.
철없이, 생각없이 들어와서 차를 시켜도
"낭자는 차를 왜 마신다고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으로 왠지 옷깃 여미게 하시던,
교동다원 주인장님이 다시 생각난다.
혹여라도 내 말소리가 커질세라 조심하면서
어설프게 우려내어 마신 맑은 차 몇 잔.
잘 쉬다 갑니다.
떠나는 날 아침식사는 고민 끝에 -
콩나루집.
내가 늘 좋아하는 수란.
칼칼한 전주 콩나물국밥.
"다른 집들과 차별화되는가"는 알 길 없지만
확실한 건 서울에서 먹는 것보다는 맛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비빔밥.
사실 원래는 그 유명한 왱이집 가보고 싶었는데
식당은 자고로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데 말고,
현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데로 가야 한다는 조언에
택시 아저씨의 추천집인 콩나루집에 갔더랬지.
그런데 돌아서 나오는데 못내 궁금하고 아쉽다.
콩나루집도 물론 딱히 흠잡을 데 없이 맛났지만
밝고 휑한 식당 때문인지 흥이 안 났거든.
다음부터는 그냥, 내 욕망대로 가련다.
어제 교동다원 차깔개에서 본, 친숙한 글귀.
눈부신 햇살 속에서 다시 보는 한옥마을.
그 햇살을 살짝 피해서 정자 옆 바위에서
들려주는 소금 라이브 연주도 일품.
한옥마을을 따라서 나있는 수로 중간중간에는
이렇게 막걸리를 칠링해서 입맛 돋군다.
그러고 보니 어제 한옥마을 밤거리를 걷다가
여기저기 노천 막걸리판들을 봤던 기억들.
그토록 배부르지만 않았어도 한잔 하는 건데.
지금 마실 수는 없으니 -
사가기라도 해야지.
모주나 막걸리를 비롯해서
온갖 전주 술들이 다 모여있는 곳.
모주 1병과 막걸리 종류별로 묶어서
6개들이 선물 세트를 하나 사왔는데
역시 모주보다는 막걸리에 반응이 좋았다.
남들은 모주 그렇게 맛나다는데.
하여간 단 거 안 좋아하는 희한한 집.
(그래서 늘 생일 케익도 처분 곤란이다;)
할 거 다 하고(?) 잠시 쉬는 시간.
간밤에 다원에 다녀와서 그런지
꼭 전통찻집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고
그냥 이렇게 새하얗게 익은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2층 카페도 좋더라.
우울로 시작했다가
맛으로 기분 전환하고
풍류로 다시 기분 밝아졌던
두번째 전주 여행.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흘간의 여행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길은 피곤하기 마련.
졸음 방지 특효약 꾸이맨.
처음에 괜히 이성적으로 하나만 샀다가
다음 휴게소까지 재고 부족해서 안달났네.
그래서 두번째 휴게소에서는 서너개 싹쓸이해서
서울 도착할 때까지 여유로이 먹었다는 후문.
음, 이제 제주도 여행 후기 올려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