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이자 테마가 '쿠로가와 온천마을에서 온천욕과 료칸 숙박을 즐기기'인 만큼, 숙박할 료칸을 선정하는 것이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였다. 그나마 구로가와 온천으로 갈 거라는 건 정해놨으니 그리 크지 않은 그 마을 내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럼에도 여러 모로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디를 가도 그 체험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다들 즐거워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행 예산 중에서 항공비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돈이 지출되는 항목인지라... 금액 상한선도 설정해야 하고, 그 와중에 위치, 송영 서비스 유무, 조석식 포함 여부, 노천탕의 규모 등등 고려할 게 참 많기도 많았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수년째 믿고 쓰는 료칸 전문 예약 대행 사이트인 '호텔온센닷컴'이 있지. (서포터즈 이런 거 아니고, 그냥 일본어는 못 하지만 료칸 여행은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에게 정말 희망의 빛을 던져준 사이트라서 나도 모르게 예찬을...)

 

호텔온센닷컴에서 쿠로가와 온천 지역을 친 다음에, 가격 올림순 정렬을 하고, 그 중에서 마음에 덜 드는 걸 빼고, 우리 예산에 맞는 료칸들만 추려보니 목록이 다음과 같았다. (초반에 나의 선호도 순위대로 기재)

 

- 쿠로가와소

- 산가

- 유메린도우

- 오쿠노유

- 야마미즈키

 

방문 시기나 행사, 방의 등급 등에 따라 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기본 10조 화실로 예약했을 경우에 인당 가격이 20만원 미만인 곳들이다. 이 중 어디로 해도 괜찮았겠지만 나름 이것저것 많이 고려하느라 품이 들었네.

 

나의 1순위였던 '쿠로가와소'는 료칸의 외형이나 온천탕의 갯수와 규모 등 여러 면에서 '과락이 없는' 곳이어서 1순위로 올렸지. 석식을 일행끼리 오붓하게 먹을 수 있게 방으로 서빙해주는 것도 특징이다. 물론 생각해보니 식당으로 내려가서 먹는 게 어차피 더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기껏 여기로 마음을 정해서 예약 진행을 하였지만, 만실로 인해서 실패... 크흥.

 

그래서 곧바로 다음 순위였던 '산가'로 눈을 돌렸다. 마을 중심부에서의 거리는 제법 있지만, 그만큼 호젓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며, 가격 또한 합리적인 편이어서 늘 인기 상위권에 랭킹되어 있는 곳이다. 역시나 인기 순위인 '호잔테이'나 '타케후에'는 각각 20만원, 40만원대를 호가하는 걸 생각하면 정말 솔깃한 가격이지. 무엇보다도 다른 료칸의 일반 화실 가격으로 '내탕이 딸린 특별 화실'까지 예약할 수 있는 점이 최장점. 아마도 엄마랑 같이 갔으면 이 특별 화실을 노렸을 거야. 내탕도 즐기고, 공용탕도 즐기고, 거의 하루 종일 온천만 하고 놀았을지도? 여튼, 산가의 일반 화실은 예약 성공했는데, 여기에서 한번 더 변경을 하게 된다. 추위를 많이 타는 일행이 조심스럽게 '산가의 화실이 겨울에는 유독 춥다는 후기를 봐서 걱정된다'고 하길래, 호쾌하게 또 바꿔드렸음 ㅋㅋㅋ 사실 일본 다다미방의 특성상 다른 데를 가도 춥기는 매한가지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얼마나 추위를 많이 타는지도 내 익히 알거니와, 이건 건강과 직결된 일이라서, 나중에 혹여라도 누가 감기라도 걸려서 '아, 그때 숙소 더 알아볼걸' 후회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약간의 수고를 더 들여서 한번 더 바꾸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최종 예약한 야마미즈키 또한 산가와는 반대편의 숲 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춥기는 똑같이 추웠던 것 같다 ㅋㅋㅋ)

 

'유메린도우'는 보다 마을 중심부에 가까운 위치라서, 당일 온천투어를 하는 사람들 간에도 인기가 많다. 특히나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워서 송영이 별도로 필요 없을 정도! 버스를 타러 가기 전 마지막 온천 투어를 하기에도 편리한 위치일 듯. '오쿠노유' 역시 산 속 전경이긴 하지만, 산가나 야마미즈키에 비해서는 마을 중심부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 유메린도우와 오쿠노유는 산가 예약을 다른 곳으로 변경하기로 했을 때 '무던한 백업 플랜'으로 생각했던 곳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건 '야마미즈키'였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마을 중심 쪽에 있는 유메린도우나 오쿠노유도 나쁘진 않았지만, 기왕 하는 거 보다 노천탕의 특징이 더 마음에 드는 곳으로! 그런데 산가가 마을 서북쪽 산 속이라면, 야마미즈키는 마을 동북쪽 산 속이라... 어차피 거리도 멀고 (버스 없이 오가기는 무리) 춥기도 추웠다는 거 ㅋㅋㅋ 하지만, 바로 옆으로 강이 콸콸 흐르고 시야가 탁 트여있는 그 온천탕 덕분에, 여기로 예약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어, 전혀.

 

 

 

 

 

 

건물 외관과 정원 사진을 생각보다 많이 못 찍어서 아쉽지만, 우리의 야마미즈키 료칸은 이런 느낌이었다. 대체로 모든 방들과 시설들이 하나의 큰 건물에 모여있고, 산 속에서 부지를 매우 넓게 쓰기 때문에 온천까지 가는 산책길, 노천탕 주변에 탁 트인 산과 강의 풍경이 시원시원하다.

 

 

 

 

 

 

우리가 묵을 방. 가장 기본형인 10조 화실로 예약했다. 이 다다미 풍경은 언제 봐도 반갑단 말이야. '일본에 여행왔음'이 가장 농도 있게 느껴지는 순간. 그래서 늘 침대가 있는 양실을 제외하고 이부자리를 깔고 자는 화실을 선호하곤 하지.

 

 

 

 

 

 

나름 옆에 이렇게 커피 머신과 작은 냉장고, 싱크대와 세면대, 화장대로 쓸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여행 내내 사진과 영상을 찍고 전송해주고, 포켓 와이파이도 관리하느라, 충전을 가장 긴밀하게 많이 해야 했던 나는 이 커피 머신 좌측에 충전 스테이션을 차리기도 했지 ㅎㅎㅎ

 

 

 

 

 

 

짐도 내려놓고 방 구경도 얼추 했으니, 잠시 따끈하고 고소한 녹차 한 잔과 함께 쉬어 갑시다. 티푸드로 팥양갱도 두어 조각씩 내주셨는데, 다들 '로쿠'의 슈크림빵 등 간식을 실컷 먹고 온지라 양갱에는 거의 손도 안 댔다 ㅎㅎㅎ

 

 

 

 

 

 

우리 방의 2층 전경이 살폿 엿보이는 사진. 원래는 여기 앉아서 바깥 풍경도 보고 차도 한 잔 마시며 정취를 즐기는 곳인데... 우리는 쿠마몬 수건 건조대로 썼네 그려... 이 풍경을 보고 직원분이 '쿠마몬 잇빠이데스네' 라고 정의하심 ㅋㅋㅋ

 

 

 

 

 

 

온천 목욕을 따끈하게 하고 돌아오니 이렇게 두툼 폭신한 이불이 네 채 나란히 깔려있다. 그래, 이 맛에 료칸 숙박하는 거지! 따끈하게 목욕도 하고 왔겠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은 마음들도 있었겠지만, 가이세키 요리가 우리를 기다린다네 ㅎㅎㅎ

 

 

 

 

 

 

식사의 서빙 방식은 각 료칸마다 다 다른데, 야마미즈키는 이렇게 일행별로 독립된 식사 공간을 제공한다. 일정 내내 예약자의 이름을 문 앞에 써서 붙여두고, 조식도 석식도 다 여기에서 예약된 시간에 준비해주심.

 

 

 

 

 

 

가이세키는 입으로 먹기 전에 눈으로 먼저 먹는 요리라고 하니까, 찬찬히 감상해봅시다. 우측에 있는 건 달걀찜인 줄 알았는데, 마치 떡 같은 제형의 온천두부라고 합디다. 이 날 석식에 등장한 두부들은 죄다 말캉한 게 아니라 쫄깃한 식감이었네. 혹시 이게 쿠로가와 음식의 특징이기도 한 건가? 아니면, 야마미즈키 료칸 안주인의 취향? 잘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이럴거다 저럴거다 종알종알 수다 떨면서 즐겁게 먹었다.

 

 

 

 

 

 

정식에 나오는 모든 메뉴들이 이렇게 예쁜 한지에 기재되어 나오는데... 읽을 수가 없어... 중간중간 등장하는 한자를 참고해서 '이게 이건가봐'라는 식으로, 어림짐작해가면서 먹었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배가 불러서 '지금 여기까지 나온 것 같아! 그럼 앞으로 2코스 더 남은 건가?' 이러면서 포만감 컨트롤을 하기도 했지 ㅎㅎㅎ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한 입'에 선정되신... 주석잔에 담겨나온 차가운 나마비루!!! 개운하게 목욕하고, 편안하게 유카타 입고, 여유롭게 가이세키 요리를 먹으면서 마시는 맥주가 맛이 없을 리도 없지마는... 이 주석 소재의 맥주잔 또한 단단히 한 몫 한 것 같다. 최적의 시원한 온도를 유지해준 덕에 목넘김이 아주 그냥 세상에 예술이었네. 나름 금주 모드를 유지하던 민느도 여기에서 봉인 해제되어, 두 모금을 마셨다고 한다...

 

 

 

 

 

 

료칸 옆에 흐르는 강에서 갓 채집해온 것만 같은 비주얼의 ㅋㅋㅋ 민물생선 구이. 굵은 소금이 좀 불균일하게 뿌려져 있는 바람에 복불복으로 소금 어택을 당하긴 했지만; 생선 자체는 맛있었다. 다들 한 꼬치씩 들고 뜯어먹는 재미도 있고~

 

 

 

 

 

 

접시 색상이 화려해서 눈길이 확 갔던 요리. 그러나 나는 원래 로스트 비프 안 좋아해... 이건 사진만 찍고 거의 먹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 담당이셨던 직원분, 그 70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우리가 음식을 남기면 매번 더 안 먹냐고 채근하셔서 ㅋㅋㅋ 뭔가 다 조금씩은 먹은 티를 내야 할 것 같았음 ㅋ 캬롯또(당근) 더 먹으라던 그 분의 전언을 잊을 수가 없네...

 

 

 

 

 

 

다들 배불러 소리가 연이어 나오는 시점에 등장한 디저트. 좌측의 저건 '녹차 붕어 사만코 맛'이었다고 한다 ㅋㅋㅋ 의외로 우측의 저 요거트가 상큼하니 마무리용으로 좋았던 기억!

 

이렇게 몸이 편안하고 눈이 즐겁고 수다가 행복한 식사 시간이었지만, 야마미즈키의 요리에는 그냥 중간 정도의 점수를 주련다. 10점 만점에 6점 정도? 예전에 타케오나 우레시노 온천에서 먹었던 가이세키 요리들에 비하면 다소 평이한 수준이었거든.

 

나는 료칸 후기들에 이따금씩 '가이세키는 화려한데 맛은 그냥 그래요'라는 평을 보면 매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은 일본 요리가 입에 안 맞나? 세상에 그 황홀하게 맛난 걸 왜 이렇게 심드렁하게 표현하지? 이랬는데...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료칸마다 분명 요리의 스타일이나 맛의 차이가 클 수 밖에! 그리고 야마미즈키는 고즈넉한 산 속 전경, 널찍한 부지와 넉넉한 방의 갯수, 탁 트인 노천탕 등이 장점이지만, 요리 쪽으로는 특화되지 않은 료칸이다.

 

만약에 '온천욕은 조금만 하고, 가이세키 정식에 기대가 큰' 사람이라면 다른 료칸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 하지만, 우리는 친구들끼리 조잘조잘 여유롭게 식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고, 온천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점이 그리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만약에 엄마랑 같이 쿠로가와를 간다면, 야마미즈키는 당일 온천 투어로만 오고, 숙박 및 식사는 다른 료칸으로 갈 것 같다. 우리 문여사님에게는 식사가 느므느므 중요하니카 ㅋㅋㅋ)

 

 

 

 

 

 

밤 목욕하고 개운해진 몸에 두툼한 이불 덮고 푹 자고 일어나서, 또 아침 목욕까지 하고 상큼하게 조식 먹으러 내려왔다. 간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정원의 풍경까지, 굿모닝.

 

 

 

 

 

 

체크아웃 직전까지 유카타와 한 몸이 되어 지냈지 :)

 

 

 

 

 

 

더 화려하고 다채롭게 나오는 건 석식이지만, 사실 난 료칸에서의 조식에 더 애정이 있다. 그건 아마도 이 온천 달걀, 그리고 따끈 담백한 온천 두부탕 때문일 거야. 달걀은 이렇게 톡- 까서 맑은 소스를 살짝 뿌려서 호로록- 먹어주는데 그 말캉하고 보드라운 식감이 기분 좋다.

 

 

 

 

 

 

일본 가정식 느낌 담뿍 나게, 갓 지은 밥 위에 우메보시를 한 입 얹어서... 아우, 사진으로만 봐도 신 맛이 느껴지는 것 같고 입 안에 침이 고이네. 사실 나도 시큼새큼한 우메보시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일본의 맛'이라서 늘 한 입씩은 맛보게 되더라.

 

 

 

 

 

 

몽글몽글 보글보글, 푸근하게 풀어지는 온천 두부 맑은 탕. 문득, 우레시노 온천마을의 타카사고 료칸에서 먹었던 조식 두부탕이 생각나네. 규모는 자그마하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일품이며 무엇보다도 요리로 정평이 나있는 타카사고는 두부의 맛까지 정말 특출나게 맛있었던 기억. 쿠로가와에서 우레시노를 추억해서 미안해... ㅋ

 

 

 

 

 

 

가장 중요한 온천! 물론 장소의 특성상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지만, 정말 이 곳의 노천탕은 일품이었다. 실내 목욕탕에서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와서 나체 산책길을 따라 걸어가면 길 끄트머리에 마법과도 같이 눈 앞에 펼쳐지는 물의 풍경. 널찍한 노천탕 바로 옆으로는 강이 콸콸 흐르고 숲이 둘러싸고 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바로 앞에, 옆에, 온 사방에 자연이 가득차 있다.

 

유후인이 잘 단장한 일본 소녀, 타케오가 듬직하고 인상 좋은 아저씨, 우레시노가 소박하고 수줍은 시골 처녀 같다면... 이 쿠로가와는, 특히나 야마미즈키 료칸은 숲의 정령 같은 인상이었다.

 

 

 

 

 

 

실내탕에 앉아서 전면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풍경도 이토록이나 절경이다. 이건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새벽 시간에 찍은 거지만, 환한 낮시간의 숲 풍경 또한 잊을 수가 없네. 따끈한 탕에 들어 앉아서 시원한 산 속 바람을 느끼고 콸콸콸 흐르는 강의 소리를 즐기는 그 기분은, 정말이지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의 모든 감각들이 다 깨어나있는 기분이랄까!

 

 

 

 

 

 

아쉬우니까 홈페이지 공식 사진도 하나 덧붙여보자. 이 사진에서조차 충분히 표현이 되지는 않았지만, 노천탕 바로 옆으로 강이 콰르르 흐르는 모습. 그리고 작은 나무 정자 같은 공간이 있어서 비나 눈이 내릴 때 아늑하게 들어앉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서늘한 비를 그냥 그대로 맞으면서 온천하는 게 더 좋았어 :)

 

 

 

 

 

 

그런 편안한 시간,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준 야마미즈키 료칸 앞에서 다 같이 단체사진 한 장! 전 날, 유카타 입고 앞에서 사진 좀 찍어보려고도 했는데 밤바람이 하도 추워서 다들 바로 포기하고 목욕탕으로 후퇴 ㅋㅋㅋ

 

 

 

 

 

 

이렇게 파릇파릇하고 촉촉한 숲길에서도 한 장! 이 사진은 이번 여행 포토북의 표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네. 후후후.

 

 

 

 

 

 

료칸의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버스 정류장으로 가보세. 버스 없이 오가기에는 마을과의 거리도 멀고 워낙 산 속에 들어앉은 야마미즈키인지라, 30분에 한번씩 셔틀을 운영한다. 마을 중심부의 온천조합, 그리고 버스 정류장 등 주요 지점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내려줍니다요. 일단 체크인을 하고서 편안하게 유카타 입고 마을 구경이나 다른 료칸 온천 투어를 하러 나올 때에도 유용한 교통 수단. 뭐, 우리는 체크인한 이후로는 야마미즈키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지만 말이야 ㅎㅎㅎ

 

 

 

 

나의 총평 :

산과 강, 숲, 자연이 본디 모습 그대로 숨쉬고 있는 게 매력적인 쿠로가와 온천마을. 이 곳의 장점을 잘 활용한 야마미즈키 료칸. 비록 요리는 특장점이 아닌 걸로 판단되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넓은 부지와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자연 속에 녹아드는 멋진 전경의 노천탕까지 누릴 수 있는 곳. 이번 우리 여행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어준 야마미즈키 료칸, 고마워.

 

 

 

 

 

 

 

 

  

 

 

 

항공권과 쿠로가와 료칸 숙박 예약을 완료하고 나면, 후쿠오카에서 적당한 호텔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거슨 매우 크나큰 오산이었다. 2월 초 여행을 거의 2달이나 앞둔 시점에도 후쿠오카에 '마음에 드는 가격대에, 여자 4명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 물론 아예 예산을 확 올려버리면 가능하지만, 나름 추가 금액 거의 없이 정해진 여행계 금액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그리고 어차피 이틀 간의 숙박 중에서도 구로가와 료칸에서의 숙박이 더 중점이기 때문에 후쿠오카 숙박에는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은 탓도 있어서, 이래저래 제약이 많았다.

 

4인 동시 숙박 가능한 방은 애당초 갯수가 적은 데다가, 저렴한 호텔 2인실을 2개 예약하려고 해도 안 되고, 정말이지 믿고 꿍쳐둔(?) 최후의 방편이었던 토요코인마저 싸그리 만실인 걸 보고 (특정 지점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카타 지역의 모든 토요코인이 그랬음...) 이만하면 호텔은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라는 판단과 함께 -

 

에어비앤비(AirBnB)로 눈을 돌렸다.

 

사실 나는 에어비앤비를 진작에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는데, 여러 명이 움직이는 여행이고 잠자리를 좀 타는 멤버도 있어서, 섣불리 하지는 말자는 생각에 처음에는 옵션에서 제외했었다. 그러나, 뭐 어떡해. 숙소를 잡기는 잡아야겠고, 후쿠오카의 웬만한 호텔은 종류별로 다 들여다봐도 답이 없는걸.

 

그런데, 선택지에서 밀려서 결정한 이 에어비앤비 숙소가 우리의 후쿠오카 여행의 백미이자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가 될 줄이야. 게다가 의도치도 않게 경비 절약마저 해주었으니... 후후후.

 

 

 

 

에어비앤비는 사이트가 워낙 느려서 모바일 앱으로 보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원하는 지역을 치고서 방의 비주얼을 보고 선택해도 되고, 지도상에 배열시켜서 가장 좋은 위치 기준으로 선택해도 된다. 나는 일단 권역을 우리가 구로가와로 갈 때 버스를 탈 하카타 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걸어서 15분 거리 이내로 잡고 (그 반경 이내에서는 아주 역 바로 옆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는 식) 그 다음에 가격 (어쨌든 총액이 호텔에 쓰려던 금액을 넘어서면 곤란하니까) 그 후에 시설 (여자 넷이서 자기에 깔끔하고, 샤워실 화장실 등 시설이 적합한가) 이런 순서로 고려해서 골랐지.

 

그리하여 최종 예약한 방은 다음과 같다 :

 

 

 

 

하카타역 남단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스트 Arisa 님의 집. 위치도 저만하면 걸을 만 하고, 와이파이 샤워시설 등 모든 게 다 갖춰져 있고, 가격도 예산 내에 있고 (인당 가격 기준이며, 인원에 따라 추가 금액 있다) 침대도 3개여서 여자 넷이서 자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이상 바라는 바도 없고, 후쿠오카 호텔 만실에 하도 시달려서, 이쯤에서 바로 예약을 감행해버렸지... 아마도 룸의 실제 비주얼은 사진에 비해서는 다소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하고.

 

 

 

 

 

이런 식으로 숙소를 지도 정렬을 시키면, 내 조건에 맞는 얼마짜리 숙소가 어디쯤에 위치해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물론, 위치는 가까운데 해당 건물 주변이 어둑하다거나,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점들은 대개 기존 이용자들의 후기를 통해서 보완하는 게 좋다.

 

나도 예약 당시에 Arisa의 집보다 하카타역에 더 가깝고, 가격도 엇비슷하거나 살짝 더 저렴하며, 침대 갯수도 넉넉한 곳을 한 군데 봤는데... 거기는 에어비앤비에 등록한지 얼마 안 되는 곳이었고 따라서 고객 후기가 거의 없었다. 물론 막상 가보면 대박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과 여럿이 여행 가는데 무리수를 두고 싶지는 않아서, 거리는 역에서 다소 더 멀지만 이미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Arisa네로 결정했던 거지.

 

예약 및 완불을 하고 나면, 예약자의 이메일로 주소, 주의사항, 숙소 와이파이 번호 그리고 역에서 숙소까지 찾아오는 자세한 한국어 지도 등이 송부되어 온다. 꼭 잊지 말고 프린트해갈 것! 이 사전 자료들과 구글맵만 있으면 문제 없어!

 

 

 

 

 

 

우리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우와, 이거 사진이랑 똑같잖아? 각도발 조명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정직한 사진이었다니?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진과 실물의 일치에 감탄부터 나왔다. 이렇게 채광 좋고 침대 넉넉하고 우리끼리 오붓하게 지내기 좋은 방이 18만원 밖에 안 하다니! 호텔은 3-4인실 찾기가 힘들어서 둘둘씩 나뉘어서 자거나 훨씬 더 비싼 돈을 줬어야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게다가 청소 상태도 흠잡을 데가 없어!

 

특히나 나는 일일히 찾아보고 비교해보고 알아보고 예약하고 자료 출력까지 한 입장이어서 그런지... 내가 예상한 것과 동일하거나 훨씬 더 좋은 숙소를 확인하고서 엄청 신나고 뿌듯해했다. 와, 내가 해냈어, 뭐 이런 느낌? ㅎㅎㅎ

 

 

 

 

 

 

이렇게 스튜디오 타입의 아파트에 수퍼싱글? 퀸? 사이즈의 침대가 2개 놓여 있고 부엌 쪽에 좀 낮은 높이의 추가 매트리스가 놓여 있다. 침대당 2명으로 쳐서 수용 가능 인원은 최대한 6명까지.

 

그래서 우리는 사다리타기를 통해서 진 사람 둘이서 아래 침대에서 같이 자고, 이긴 사람 둘은 단독 침대를 쓰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추가 침대는 접히는 타입의 매트리스여서 중간이 다소 움푹하고 이 때문에 허리가 좀 불편하게 되어 있더라고. 잠자리 안 타는 사람이 혼자 쓰기에는 상관 없겠지만, 둘이서 자기에는 무리가 있는 편.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스페어 베드를 그냥 버리고, 정규 침대에 2명씩 나눠서 자면 되잖아? ㅋㅋㅋ 아니, 그런 수가 있었네? 천잰데? 우리 사다리타기는 그렇게 열심히 왜 한 거임? ㅋㅋㅋㅋㅋㅋㅋ 애당초 정규 침대 2개만 쓴다고 생각했으면 간단했을 일을, 스페어 베드가 있으니까 있는 침대는 다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만...

 

 

 

 

 

 

여튼, 한바탕 삽질을 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침대 2개로 나뉘어서 편하게 잘 잤다는 뭐 그런 후문. 침대 머리맡에 충전하는 곳도 있어서 여러 모로 편했다.

 

사실, 침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마음에 걸린 건 역시나 일본 집 특유의 냉기. 온돌바닥을 고안하신 우리 조상님들 다시 한번 존경합니다. 후쿠오카는 서울에 비해서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라디에이터 하나로는 방을 따스하게 유지하기에 무리였다.

 

다들 따스한 밍크 수면 잠옷랑 수면 양말을 챙겨오긴 했지만, 그래도 추위를 제법 타는 사람이 둘 있어서 걱정을 하긴 했는데, 뭐 다행히도 감기 걸리거나 하지는 않았네. 여튼 겨울에 여행을 가는 경우에는 이런 난방 요소를 고려하기는 해야 할 듯 싶다. 호텔의 난방과는 다른, 일반 가정 난방인데 이게 보온력이 꽤 약하다는 것?

 

 

 

 

 

 

후쿠오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오는 곳이라서, 이렇게 주의사항도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써있었따. 물론 경찰이니 구급차니 소방서니 부를 일은 안 생겼지만, 이렇게 긴급 대처가 잘 되어 있는 걸 확인하니 조큰영...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욕실과 화장실! 두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여러 사람이 묵으면서 쓰기 편하다. 특히 아침에 바쁘게 나갈 준비할 때에는 이런 분할형 구조가 최고! (물론 우리는 구로가와 가서 어차피 온천욕 할 거라면서 아침에 세수와 양치만 겨우 하고 나섰지만...?)

 

세면대가 있는 이 공간에는 세탁기, 그리고 인당 2개씩의 수건이 준비된 바구니가 있다. 안에서 누가 샤워를 하고 있어도, 세수나 양치, 또는 빨래가 가능한 구조여서 매우 좋았지. 심지어 세면대에는 치약과 면봉 등 필요한 물건들이 촘촘하게 다 준비되어 있어서 간단한 세안제와 각자 칫솔 정도만 챙겨가면 될 정도.

 

 

 

 

 

 

욕실에는 자그마치 반신욕 욕조까지 있다! 공간이 자그마하지만 정말 이렇게 알차게 빼곡하게 짜여 있다니! 공간이 잘 나뉘어 있는 데다가 샤워실은 이렇게 자그마해서 씻을 때에도 오한 들지 않고 금방 사우나 마냥 따끈해지는 점도 굳굳. 게다가 샴푸 린스는 츠바키, 바디워시는 도브, 죄다 정품으로 다 구비되어 있었어... 난 이 점은 혹시 몰라서 샴푸 린스 정품으로 들고 갔는데, 부질 없었네?

 

 

 

 

 

 

여러분, 다들 쾌변하고 행복해지세여...

 

 

 

 

 

 

숙소에서 한숨 돌리고 이제 캐널시티로 향하는 길. 11층이었던 우리 숙소 현관에서 둘러본 주변은 이렇게 생겼다. 번화가 한가운데에 있는 호텔이 아니라, 정말 현지인들이 사는 주거지역 한가운데에 있는 자그마한 아파트. 게다가 나오자마자 바로 초등학교가 하나 있어서 괜히 마음이 더 놓이고 그러네. 물론 주거 지역이니만큼 오밤중의 음악, 그리고 층간소음 등에는 더욱 주의해야겠지.

 

 

 

 

 

 

그렇게 하루를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베란다에서 바라본 후쿠오카의 일상 풍경.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 곳에서 '살아보라'고 하는 에어비앤비의 광고 카피들이 유독 와닿는 순간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담아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열렬한 숙박 후기를 올렸더랬지. 후후후. 고마워요 AirBnB. 사랑해요 Arisa. 비록 얼굴도 본 적이 없이 이메일과 메시지로만 대화했지만, 당신은 우리의 후쿠오카 추억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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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에어비앤비라는 시스템 자체가 각 사람이 보유한 집을 등록해서 운영하는 식이라서, 어느 도시에서 어느 호스트의 집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만족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이런 예측불허 복불복이야말로 에어비앤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겠지.

 

우리의 숙소 선택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

 

(1) 후쿠오카라는 도시의 특성

숙박비가 비싸며 인당 차지를 철저하게 하는 일본이기 때문에, 호텔보다 이런 민박형(?)의 이득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나 우리처럼 친구 4명, 혹은 아이가 딸린 가족형의 일행이라면 더더욱.

 

(2) 호스트의 신용도를 중시했다

기복이 상당한 에에비앤비에서 좋은 평가를 이미 많이 받은 호스트의 존재는 소중하다. 나는 보다 역에서 가까운 위치나 보다 저렴한 가격 등의 장점을 포기하고서라도 평가가 좋은 호스트를 중시했는데 이것 또한 성공 요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 호스트인 Arisa는 숙소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고 에어비앤비에 등록한지도 좀 돼서, 고객 대응 시스템 등이 효율적이라는 느낌 또한 받았다.

 

(3) 방의 비주얼보다 기능 위주로 판단

카페트나 액자 등 인테리어 아이템들이 있으면 방의 사진 비주얼이 꽤나 그럴싸한데, 그런 외형보다는 침대가 몇 개인가, 와이파이가 잘 되는가, 수건이 제공되는가, 등등 기능 위주로 판단했던 것 또한 적중. 물론 우리 숙소는 여기에 덤으로 침대와 쿠션의 색감도 산뜻하고 채광도 좋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부가적인 요소고, 실제로는 하룻밤을 편안하게 잘 쉬고 잘 수 있는가... 이게 중요한 거니까.

 

 

 

 

여튼,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복불복의 세계지만 (그래서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남편은 여전히 좀 탐탁치 않아 함 ㅋㅋㅋ) 이렇게 첫 체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버렸으니, 다음에도 친구들과 도심지로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난 그때는 보다 손쉽게 에어비앤비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

 

피쓰-

 

 

 

 

 

 

  

 

 

 

빠르게 빠르게, 여행의 3일째이자 마지막 날의 기록. 쿠로가와에서의 온천 일정을 마치고 다시 후쿠오카로 이동해서, 육아인들은 이른 오후 비행기로 먼저 귀국하고, 비육아인들은 텐진에서 도심을 더 즐기고 밤 비행기로 돌아가기로 한 일정.

 

 

 

 

 

 

평소에는 아침에 죽어라 못 일어나는 내가, 여행만 가면 어쩜 그리 눈이 반짝 떠지는지, 아직까지도 크나큰 미스테리이다. 특히나 이 날은 '아직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간에 목욕을 가서 노천탕의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으리라'는 욕망이 해 뜨기 전 새벽에 나를 깨웠다. 사진 찍겠다는 야망으로 후다닥 달려간 나와, 온천이 너무 좋아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즐기고 싶던 밍기와, 원래는 목욕보다도 잠을 선택했을 테지만 새벽에 추워서 잠이 깨버린 바람에 기왕 이렇게 된 거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기로 한 정민느와, 셋이서 새벽 목욕에 나섰다.

 

과연 온천 입구에는 신발 하나 없고, 우리가 첫 입욕객이었지! 그런데 겨울철 이 시간, 그것도 산 속의 풍경은 칠흑 같이 어두워서, 결국 사진 상으로는 이게 아침 첫 목욕인지, 간밤에 자러 가기 전의 밤 목욕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는 거 ㅋㅋㅋ 해가 뜨고 좀 더 밝아진 이후에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이렇게 탕 밖으로 산 속 풍경이 펼쳐지고 강이 흐르는 모습을 찍은 것만 해도 만족해;

 

 

 

 

 

 

개운하게 씻고, 아침 먹으러 내려오니 또 이렇게 아기자기한 밥상이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간밤에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우리 식사 공간 밖으로도 이렇게 초록의 정원 풍경이 보였네.

 

 

 

 

 

 

창가에 옹기종기 들러붙어서 풍경 구경하는 원투쓰리.

 

 

 

 

 

 

내가 료칸 가이세키 정식에서 석식보다도 조식을 더 기대하는 이유는 아마도 몽글몽글 보드라운 온천 달걀, 그리고 따끈 담백한 온천 두부탕 때문일 거다. 어찌 보면 유별난 맛도 아니건만, 나에게는 이 맛이 곧 료칸의 미각적 기억이기 때문에. 호로록.

 

 

 

 

 

 

그러고 보니 료칸 외관 사진을 많이 못 찍었네. 첫 날, 온천 가는 길에 유카타 입고 사진 좀 찍으려 하였으나 날이 너무 추워서;;; 다들 심신 보존을 위하여 후퇴했고... 체크아웃할 때는 추가 비용 지불하고 영수증 챙기고 송영버스를 찾느라 뭔가 좀 분주해서... 결국 별도의 전경 사진은 없이, 나를 제외한 각자의 폰 셀카, 그리고 그나마 이렇게 직원분이 찍어주신 우리의 단체샷 정도가 남았다.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야! 그리고 이 사진은 우리 여행 포토북의 표지로 쓰였지. 호호호.)

 

 

 

 

 

 

쿠로가와-후쿠오카 버스를 타고서,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 육아인 유닛을 내려주고, 우리는 두어 정거장 더 가서 번화가인 텐진역에 내렸다. 버스 터미널과 연결된 건물에서 바지런히 코인락커를 찾아서 캐리어를 야무지게 챙겨넣고, 간편해진 차림으로 텐진 나들이 시작!

 

사실 날이 그닥 춥지는 않았지만 혹여라도 싶어서 아우터를 들고 다녔는데, 단 한번도 안 입었어... 후쿠오카의 겨울이란 따뜻하고만. 게다가 우리가 거의 모든 시간을 쉼 없이 걸어다닌 탓도 있겠지만. 여튼 백화점 지하에서 눈요기하다가 물 한 병씩 사들고 치얼쓰!

 

(그러고 보니 여기서부터는 민느와 다닌 거라서,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에도 초상권 보호 처리 안 해도 되는 게 편하근영 ㅋㅋㅋ)

 

 

 

 

 

 

2/14을 앞둔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은 온통 발렌타인 데이 특수! 결국 예쁜 초콜릿 박스 앞에서 지갑을 꺼내든 핑크몬. 뒤에 지나가는 검은 옷의 여자분이 뭔가 '쟤 뭐지' 스러운 눈길로 포착되셨길래 친절하게 모자이크 처리해드렸다...

 

 

 

 

 

 

'왠지 저쪽에 스타킹 및 잡화가 있을 것 같아'라면서 나를 이끄신 쇼핑 요정님... 와, 일본어는 몰라도 쇼핑 감각은 글로벌하군요 ㅋㅋㅋ 디자인도 예쁘면서 가격도 세일 중인 상품들이 꽤 많더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하트 난무 스타킹을 두고 잠시 고민도 했으나, 나의 평소 패턴을 냉철히 되돌아보니 저걸 신을 일은 결단코 없더이다. 결국 이렇게 사진으로 추억으로만 남겨두고, 보다 무던한 랑방의 스타킹으로 마음을 돌렸지. 민느는 우측에 보이는 저 화려한 레이스 스타킹도 구매했고, 여튼 우리 둘 다 행복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백화점에서 스타킹 사기도, 생활용품점 로프트에 들르는 것도, 다 나의 주도였는데 막상 구매는 민느가 더 많이 한 것 가틈... 아, 물론 나는 드럭스토어에서 쇼핑 몰빵(?)을 했지만 :)

 

 

 

 

 

 

로프트에서 우리를 열광하게 한...!!! 몰캉몰캉 파스텔 쿠션 코너! 와, 이게 보기에도 사랑스럽지만 실물을 만져보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둘 다 사고 싶다고 방방 뛰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막상 구매는 민느만 했네 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나 이거 살래.'

 

 

 

 

 

 

'난 구매는 참겠지만, 사진은 찍을래.'

 

 

 

 

 

 

사케 애호가는 이 앞에서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니, 뭔 놈의 사케병이랑 잔들이 이케이케 귀여워?! 내가 집에 이미 사케잔이 종류별로 있지만 않았어도, 이건 두번도 생각 안 하고 바로 샀다 ㅠㅠ

 

 

 

 

 

 

그리고 은근히 고민하게 만들었던 스누피 굿즈. 괜히 스누피-우드스탁-찰리브라운 뚜껑 머그 시리즈로 모으고 싶고 막막 그르네... 하지만 역시 집에 머그가 부족한 게 아닌지라, 참았다. 수납 공간에 맞춰서 물건을 사는 편인데, 현재 우리 집에 머그 갯수가 컵걸이에 딱 맞게 있단 말이야. 히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찾아둔 곳, 앨리스 테마 스토어 '앨리스 온 웬즈데이' 자 어디 한번 들어가봅시다. 땅굴로 들어간 토끼를 쫓아가는 앨리스가 된 것 마냥, 낮은 문으로 쏘옥. (그리고 오른손에는 로프트에서 구매한 파스텔 쿠션 2개가 고이 들려있지...)

 

 

 

 

 

 

정말 단박에 동화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수요일의 앨리스. 뭔가를 사지 않아도, 하지 않아도,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봐도 이 시간이 즐겁다.

 

 

 

 

 

 

'Drink me'

 

으아, 맛은 정말 내 취향 아닐 것 같아. 그런데 이 잔망스러운 것! 왠지 사고 싶다! 갖고 싶다! 이 귀여운 자태를 소유하고 싶다!!! 라고 잠시 폭주하다가 얌전히 사진으로만 남기고 돌아섰음... 만약에 이 여행을 민느 없이 나 혼자 온 거였더라면, 그녀를 위해서 소소하게 선물용으로는 하나 샀을지도 :)

 

 

 

 

 

 

낮은 문을 지나, 열쇠 문을 건너, 가장 안쪽의 공간에는 이렇게 어둑한 조명과 블랙 & 레드 색감 아래에 악세사리와 잡화를 파는 공간이 있다.

 

 

 

 

 

 

이렇게 '예쁘지만 딱히 살 이유는 없는' 소품들이 있는 곳 ㅋㅋㅋ 쇼핑 좀 해보고 덕질 좀 해본 30대 언니들인 우리의 평은 : 판매 가격을 더 높이더라도 제품들을 더 정교하고 고급지게 만들면 진짜 홀려서 살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뭔가 애매하다. 그러나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다... 라는 것.

 

 

 

 

 

 

임푼젤이 부탁한 허니체 헤어 트리트먼트... 나름 최저가인 곳에서 사려고 여러 곳을 미리 알아뒀었다. 여기는 가격 확인만 하고 그냥 지나치고 '미스터맥스' 가서 구매했는데 지금 보니 앞서 들렀던 이 드럭이 개당 2-3백원 더 저렴하긴 하네. 유의미한 가격 차이는 아니므로 넘어갑시다. 어차피 임미는 교토 돈키호테에서 개당 700엔인가 주고 샀다고 하니 이러나 저러나 이번에 내가 사다준 게 이득. 호호호.

 

 

 

 

 

 

드럭스토어 쇼핑을 일단 충족시켜준 '미스터맥스' 텐진점. 여기에서 나의 허니체 트리트먼트와 민느의 비오레 클렌징 티슈 등을 구입했지. 비세 화장품이 입점 안 되어 있긴 했지만, 일단 이로써 가장 중요한 쇼핑은 다 했다!

 

이 때가 오후 2시 부근이었는데, 둘 다 딱히 점심식사에 관심이 없어서 밥은 건너뛰고 돌아다니던 참이었다. 그런데 열혈 걸어다니면서 2시를 넘기니 슬슬 조금 출출해지기도 하고, 막상 돌아보려던 곳들을 예상보다도 훨씬 더 일찍 클리어해서 (둘 다 미친듯이 걸었던 탓에...) 그럼 이제 늦은 점심이나 여유있게 먹어볼까? 가 되었지.

 

원래는 텐진에 있는 '효탄스시' 본점을 가네 마네 했었지만, 첫 날 하카타에서 우오베이 스시도 워낙 맛나게 먹은 데다가, 둘 다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식욕이 우선하지 않아서 제쳐두었는데... 흠, 지금 이 시간 이 위치라면 효탄 가도 되겠는데? 갈까? 가자! 이렇게 되어서 생각도 않았던 효탄스시에 가게 되었다.

 

아마도 점심 시간에 거길 기필코 가리라, 이랬더라면 대기줄도 길고 괜히 마음 급해지고 결국 만족도 역시 덜했을 것이야. 그런데 아무런 기대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우연히 흘러가서, '뭐 거기 안 되면 말고' 식으로 갔더니...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2시 20분 부근. 2시 30분에는 주문 마감하고 오후 브레이크 타임 준비한다고 하길래 가장 무던한 런치 정식 2개 주문하고, 세이프! 이렇게 와서 잘 됐다, 우리 정말 잘 했네, 대박 럭키, 완전 신나, 등을 재잘거리면서 이제는 속편하게 주방장들이 초밥 만드는 걸 구경한다. (민느가 금주 모드가 아니었더라면 이 시점에 나마비루 2잔은 시키고 봤을걸?)

 

 

 

 

 

 

게다가, 테이블이 아니라 다이에 앉아서 난 더더욱 매우매우 좋았어! 원래도 일행이 둘이면 다이를 선호하기도 하거니와, 초밥은 이렇게 내 눈 앞에서 쥐어서 바로 놔주시는 그게 매력 아닙니카! (비록 일본어로 해주시는 초밥 설명은 잘 못 알아들었지만...)

 

 

 

 

 

 

세상 신난다! 초밥으로 투샷 셀카 찍고, 초밥 건배 영상 찍고, 그 중간중간에 한 입 한 입을 음미하면서 즐거이 먹고, 마음이 동동 뜬 행복한 늦은 점심시간이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점심까지 먹었고, 이제는 공항 가기 전에 예쁜 디저트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금액 정리도 하고 일정도 챙겨보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볼까? 라는 의미에서 '키르훼봉'이라는 카페로 발걸음을 했다. 프랑스어로 Qu'il Fait Bon 인데 저렇게 풀어놓은 것 자체가 너무나도 일본스러운 것 ㅎㅎㅎ 대기시간도 약간 있었고 (다행히도 10분 이내) 테이블보가 알록달록해서 아쉽기도 했지만, 딸기 타르트는 정말이지 훌륭했다. 다른 과일 타르트들도 다채롭게 많이 팔던데, 디저트쟁이 밍기가 지금 여기에 없다니! 우리가 너를 대신해서 맛 보고 사진과 영상을 충실하게 찍어갈게!

 

 

 

 

 

 

먼저 간 애들아, 미안해. 근데 이거 넘 맛나다.

 

 

 

 

 

 

남은 엔화도 얼추 맞게 다 털어썼고, 텐진에서 하려던 것들은 다 마쳐서, 마음에 여유가 흘러넘치는 2인. 사진 찍고, 룰룰랄라, 유유자적. 그러고 보니 내 옷도 나름 핑크 계열인데 그녀의 핑크함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군...

 

 

 

 

 

 

그런데... 그런데...! 우리가 방심했던 게 하나 있었으니, 도심에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카페임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안 받는다! 아? 아?! 우리는 엔화 안 남겨갈 거라고 아까 다 털어 써버렸는데? 1300엔 현금으로 없는데? 우리 무전취식한 거야??? 결국 민느를 가게에 인질(?)로 남겨두고 내가 구글맵 켜고 밖으로 달려나가서 인근 훼리미마트 ATM에서 현금을 뽑아왔다. 최소 금액이 1만엔이라서, 아하하하, 카페에서 지불하고 공항에서 간식까지 사고서도 7천엔이 넘게 남아버렸지. 이거 뭐, 엔화가 남아돌아서 조만간 일본 여행 다시 가야 할 판-_-?

 

이 삽질이 일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한데, 또 그러면서도 웃기기도 해서 카페를 나오면서 이렇게 '멍때림 & 경악' 투샷을 남겼다는, 뭐 그런 후일담이올씨다.

 

 

 

 

 

 

이제 후쿠오카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서 텐진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바로 인근에 별도의 노선인 '텐진 니시테쓰 후쿠오카' 역이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텐진역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그렇게 가다가 텐진역의 출구인 걸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어라, 노선도에 후쿠오카 국제공항이 안 보이고? 요금도 내가 미리 알아둔 그 금액이 아니고? 파파고를 이용해서 개찰구 직원분에게 공항 어떻게 가냐고 물었는데 '어나자라인' 이라고... 네? 알고 보니까, another line, 여기 말고 다른 노선 타셔야 돼요, 라는 거였다.

 

텐진역까지 왔다고 생각하고 지하철로 들어온 거였는데, 알고 보니 여전히 니시테쓰 역의 끄트머리 출구였던 것. 으앙 ㅋㅋㅋ 시간 여유 가지고 움직이길 잘 했잖아 ㅋ 캐리어를 드륵드륵 끌고 진짜 텐진역을 발견해서 캐리어 번쩍 들고 계단을 내려와서 무사히 티케팅을 하고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노선도 앞에서 또다시 우리의 삽질 풍경 투샷을... 축 늘어진 민느의 앞머리 한 가닥이 이 사진의 감상 뽀인뜨라고 하겠다.

 

 

 

 

 

 

지하철을 타고 나서는 뭐 무탈하게 공항까지 잘 도착하였고, 심지어 우리가 탈 진에어 체크인 오픈도 하기 전에 도착해서, 각자의 전리품 사진도 찍고 짐도 재정비하고 화장실 가서 화장도 지우고, 그러고 편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이번 여행을 오손도손 반추하는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함께 한 일행은 이게 좋아. 나에게는 아무리 좋았던 추억이라고 해도 남에게는 너무 길고 자세하게 얘기하면 지루해질 뿐이니까 자제해야 하는데, 이 모든 걸 공유한 사람과는 '좋았다'는 이야기를 몇번이고 다시금 나눌 수 있다는 게.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만찬! 사실 점심을 느지막히 먹어서 둘 다 배는 그닥 안 고팠지만, 인천 공항 랜딩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까 카페에서의 삽질 덕분에 엔화도 남아도니까 (이게 진짜 이유였을지도-_-?) 공항 카페테리아에서 우동 한 그릇과 맥주 한 잔을 시켜서 나눠 먹기로 했다. 이제 정말 서울로 돌아가는구나. 짧다면 짧은 2박 3일인데, 게다가 시외 이동도 있어서 더더욱 빠듯할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 다행히도 마치 3박 4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충만한 3일이었다. 이번 여행 잘 왔다, 그지? 응응응, 진짜 아쉬운 시간이 하나도 없었어. 우리 또 어디론가 같이 떠나자.

 

 

 

 

 

 

안녕, 후쿠오카.

안녕, 후쿠오카 너머에 있는 쿠로가와.

 

평생 친구들과도 막상 해외 여행을 같이 가면 마음 상하기가 십상이라는데, 우리는 반대로 '아니, 이렇게 쓸만한 조합에 훌륭한 여행 친구라니' 라는 즐거운 깨달음을 얹고 돌아왔네. 일본 큐슈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런 큐슈는, 이 친구들과 함께 한 큐슈는 처음이었다.

 

처음이었고, 그리고 최고였다.

 

 

 

 

 

 

  

 

 

 

우리 여행은 온천이 주안점이고, 후쿠오카에서의 1박은 덤 같은 거야... 라고 해놓고서, 이미 후쿠오카에서의 첫 날이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메인 이벤트인 온천에 대한 기대가 덜해지는 건 아니지! 후쿠오카에서 잘 놀고 잘 사고 잘 먹고 잘 잤으니, 이제는 또 한번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쿠로가와 온천으로 향해보자.

 

덧붙임. Kurokawa, 한자 기재로는 黑川 온천. 내 블로그에서도 구로카와라고 했다가, 쿠로가와라고 했다가, 정확한 기재가 오락가락 한다. 처음에는 '쿠로가와'로 썼는데, 현지에 가서 발음을 들어보니까 '구로카와' (마치 경상도 사투리 같은 억양으로...) 라고도 하고... 그래서 표기를 어찌 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호텔온센닷컴에서도 '쿠로가와'라고 쓰는 데다가, 아무래도 그게 더 대중적인 기재 같아서... 다시금 쿠로가와로 (내 멋대로) 낙찰. 탕탕탕.

 

 

 

 

 

 

우리 에어비앤비 숙소 베란다에서 보이는 하카타의 주거 지역 풍경. 그저 '적당한 가격에 잠만 자고 가면 됐지' 라고 생각했던 후쿠오카 숙박에서 이렇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고 가게 될 줄은 몰랐어. 에어비앤비 첫 체험으로는 정말 제대론데?

 

 

 

 

 

 

하도 내 사진이 없어서, '이 횡단보도에서, 저 건물이 배경으로 나오게, 내 뒷모습을 찍어달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한 결과. 근데, 건물도, 횡단보도도, 다 잘 나왔는데... 정확하게 내가 핀트 나갔엌ㅋㅋㅋㅋㅋㅋㅋ

 

 

 

 

 

 

하카타 버스 터미널을 향해서 드르륵 드르륵. 좀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이런 배경에서 그럴싸한 사진 촬영 시도 좀 했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니 뭐 그렇다. 이번 여행에서 찍은 사진의 총 장수가 적은 것은 아니건만, 그럼에도 난 계속 지도를 보면서 길을 확인하느라 바쁘거나, 혹은 영상을 찍느라 평소에 비해서는 사진을 다채롭게 많이 찍지는 못했던 거지. 이번을 교훈 삼아, 다음번 여행 때는 좀 더 효율적인 분업을 하겠노라고 다짐도 해본다. 아, 하지만 그건 다음 여행에 대한 다짐일 뿐, 이번 여행은 이대로 충분히 즐거웠지 :)

 

여튼, 버스를 무사히 탔다. 터미널을 찾아서, 탑승 정류장을 찾고, 버스 안에 안착하기까지 긴가 민가 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여튼 제대로 찾아서, 미리 발권해둔 티켓을 내고, 제자리에 앉아서, 또 한시름 놨지. 어차피 잠은 쿠로가와 가는 버스 안에서 자면 돼, 라면서 간밤에 수다 떨고 늦게 잤더니 다들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서 곯아떨어졌다. 그래, 평소에 많이 걷던 애들도 아닌데 어제 밀도있게 걸어다니느라 노곤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

 

 

 

 

 

 

큐슈를 가로질러 가는 이 버스의 창 밖으로 이런 운치있는 풍경 펼쳐지는데 계속 잠만 잘거야? ... 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냥 다들 자게 두고 나 혼자서 열심히 사진 찍고 영상 찍었다. 나중에 영상 완성되고 나면 '내가 이걸 못 보다니!' 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마, 라는 심경으로 ㅋㅋㅋ

 

 

 

 

 

 

너무 뻔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절로 하게 되는 말 - 그림 같은 풍경이구나. 날이 흐려서, 비가 내려서, 물안개가 껴서, 더욱 깊게 새겨진 기억의 한 장면이다. 햇살 맑은 날에 이 길을 갔더라도 행복하기는 매한가지였겠지만, 이렇게 애틋하지는 않았겠지.

 

 

 

 

 

 

쿠로가와 온천까지 가는 길 구비구비에도 여러 온천 마을들이 있어서 이렇게 버스가 멈춰설 때마다 모락모락 온천수의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와, 여기도 정말 굉장한데? 하지만 우리가 가는 쿠로가와는 더더욱 멋질거야!

 

 

 

 

 

 

그리하여 도착한 쿠로가와, 黑川, 검은 강이 흐르는 온천 마을. 정말이지 그 이름에 걸맞는 자태를 보여주었다. 서늘한 겨울비 (라고는 하지만, 그냥 체감 온도상 우리나라의 가을비 정도) 아래에 차분한 색감의 마을, 그리고 그 마을을 관통하는 검은 돌 바닥의 강. 정류장에 내려서 크게 내쉰 첫 숨은 서늘하고 축축했고, 온천조합 건물까지 걸어가는 발걸음은 조금 들떴다.

 

다만, 다들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어서 사진 촬영이 여의치 않았던 게 아쉬울 뿐. 사실 그래서 나는 초반에 우산 접어서 넣어버리고 그냥 보슬비를 맞고 걸어가는 편을 택했지만, 난 손에 구글맵을 쥐고 있어서... 흑흑. 나야 사진을 위해서라면 조금 천천히 가도 좋고 비를 맞아도 상관없고 손에 든 게 많아도 괜찮은데, 나보다 추위를 더 타는 애들 보고 그 상황에서 사진을 요청하자니, 심적으로도 좀 미안하고 혹여라도 컨디션 안 좋아질까 우려도 되어서 (따지고 보면 그 3명 중 2명이 오기 전에 몸이 아프지 않았던가...) 그래서 중간 어디선가부터 마음 속으로 '그래, 사진 욕심을 좀 버리자'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그 와중에 잠시 멈춰서 '흑천'의 모습은 담았다 :)

 

 

 

 

 

 

그렇게 마을을 삥- 둘러서 온천조합 건물에 도착했다. 사실 마을을 가로질러 오는 보다 가까운 길도 있었는데, 정류장에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고 사람들도 반대 방향으로 가길래, 이럴 때는 좀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가자는 차원에서 에둘러왔네. 뭐, 덕분에 오는 길에 내가 숙소 검색하면서 수 차례 봤던 다른 료칸들 위치도 확인하고, 비록 사진은 못 찍었어도 마을 풍경을 눈에 찬찬히 담아왔으니까.

 

이 온천조합에서 마을 지도를 받고, 온천 투어할 때 쓸 수건을 기념품 겸해서 사고, 코인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우리가 묵기로 한 야마미즈키 료칸은 마을에서도 버스를 타고 완전히 산 속으로 구비구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번거로워질 것 같아서 (물론 셔틀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선마을 후료칸으로!

 

 

 

 

 

 

2월, 겨울도 끄트머리를 향해 가는 계절의 풍경인데 너무나도 신선해서 순간, 늦가을을 보는 듯 했다. 한국의 겨울에 비해서 비교적 따스한 기후, 가늘게 내리는 빗방울 아래의 검은 나무들과 붉은 낙엽들, 그리고 마침 인적이 드문 마을 어귀의 골목길.

 

 

 

 

 

 

다 같이 순차적으로 서서 사진도 남겨봅시다. 다들 모여서봐, 이케이케 서봐, 하면 참 협조적인 여자들. 이 날은 어차피 연이어서 온천욕 할 거라서 화장은 해서 뭐하나, 라는 모드로... 다들 자차만 바른 민낯 상태. 어쩐지 여행 첫 날과 둘째 날의 사진/영상들이, 음, 비주얼 차이들이 많이 난다는 게 우리 스스로의 평가였다 ㅋㅋㅋ

 

 

 

 

 

 

또르르르, 퐁.

 

 

 

 

 

 

작은 마을이지만, 어디를 가도 좋다. 어느 가게 모퉁이, 어느 골목 어귀라도, 다 그 자체만으로도 다 좋다. 크지 않은 마을이어서, 마음이 급하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

 

 

 

 

 

 

강에 바로 붙어있는 료칸들은 노천욕하면서 강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매력인데, 이렇게 마을 한가운데 있는 경우에는 주변에 울타리를 쳐놓곤 한다. 우리가 묵은 야마미즈키 료칸은 완전 산 속에 있어서 울타리 없이 바로 콸콸 흐르는 강 옆에서 노천욕을 할 수 있었지 :)

 

 

 

 

 

 

모두를, 특히 달달이 애호가 김밍기를 열광하게 한, 파티세리 '로쿠'의 거대 슈크림빵! (사실 그녀가 더 좋아했던 건 말캉말캉 밀크 푸딩이었지만 ㅎㅎㅎ) 구로가와 마을 거닐면서 다들 하나씩은 먹게 된다는 슈크림 얘기는 들어는 봤지만, 내가 워낙 버터리한 디저트가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갑다 했는데, 과연 이 골목을 지나보니 그 유명세를 알 만도 하더라. 우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게스리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사방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향에 이끌려 가게에 들어서면 다양한 디저트들의 향연에 눈이 즐거워진다. 우리는 이때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이라서 '음, 여러분? 여러분???' 모드로 내가 만류도 해봤지만 다들 내 말은 콧등으로도 안 들으심 ㅋㅋㅋ 디저트 배랑 식사 배 따로 있다고, 선 디저트 후 식사해도 된다고, 여러 개 사서 지금 다 먹자는 게 아니라 하나만 맛보고 나머지는 이따가 료칸 체크인해서 티푸드로 먹을 거라고, 여튼 이유들도 다양해 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사라 사 ㅋㅋㅋ 뭔가 시트콤 같은 상황이어서 귀여웠음 :D

 

 

 

 

 

 

이 날의 오찬! 쿠로가와가 그리 큰 마을도 아니고, 어차피 저녁에 가이세키 정식이 있으니까 점심에는 꼭 무언가를 특정해서 먹겠다는 목표도 없어서, 그저 마을을 걸어다니다가 느낌 오는 대로 (여기서의 느낌이란 나의 느낌을 말한다... 내가 촉이 오는 곳으로 감 ㅋㅋㅋ) '아지도코로 나카' 라는 밥집으로 들어갔다. 종류는 다양하게 밥과 면류를 섞어서 시켜두고 다 같이 이것저것 먹기로!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방금 슈크림 먹고 다들 잘 먹더라고. 단짠의 원리가 이런 거였나 ㅋ)

 

 

 

 

 

 

료칸에 숙박하지 않고 입욕만 하는 경우에는 인당 500엔을 내고 들어가면 되는데 (숙박객이 쓰는 온천과 아예 분리된 경우도 있고, 일부 시설 이용 불가라거나 탈의실이 따로 있는 경우 등도 있다) '온센 메구리' 그러니까 정액제 쿠폰 개념의 온천 마패를 온천조합에서 구매하면 1300엔에 총 3개의 온천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도 이렇게 즐겨볼까도 생각했었지만, 한 온천을 좀 여유있게 즐기고, 나머지는 우리가 숙박하는 료칸에서 누리고 싶어서, 그냥 비교 체험용으로 딱 한 군데만 들러보기로 했다. 이게 좋은 선택이었다 싶은데, 시간도 동선도 무리가 없는 동시에, 미리 한 군데를 가보니까 우리 료칸의 온천이 얼마나 좋은지도 상대적을 더욱 체감이 되어서 즐거움이 배가 되었지. 마을을 돌아보는 도중에 잠시 씻고 쉴 수 있으니까 좋기도 하고.

 

우리가 선택한 곳은 마을 남단, 버스 정류장 인근에 있는 '이코이' 료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여기 온천의 테마가 '미인탕' 이어서... 내가 후보로 생각하는 몇 군데를 설명하는데 여기가 미인탕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정민느가 뒤도 안 돌아보고 미인탕이지! 미인탕! 미인 됩시다! 미인탕 고고! 이러면서 직진을 해서 ㅋㅋㅋ 여기로 낙점 ㅋ

 

 

 

 

 

 

어서 오세요, 고갱님,

미인 되세요, 고갱님.

 

테마가 이렇다 보니 여성 고객들의 이용이 유독 많다고 한다. 사실 뭐 남탕이야 내가 안 가봐서(...) 사람이 많은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입장료 내고 들어갈 때만 해도 이미 거의 여성 소그룹들 위주에 일부만 가족 단위였으니까, 아마 그 말이 맞는 듯도?

 

 

 

 

 

 

... 온천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입니다...

 

당연하지, 남의 맨몸을 멋대로 찍어서야 쓰나. 그래서 이용객들이 다 빠진 시점에 재빠르게 찍고 카메라 다시 넣어버렸고요? 그래도 여기에서 짧게 사진 두어 장과 물 흐르는 영상 클립까지 찍어온 덕에 우리 여행일기가 정말 풍성해졌다. 사람들 있는데 무리하게 찍은 거 아니니까, 마음 속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어글리 코리안 아니에요 흑흑... ㅠㅠ

 

이코이는 아예 숙박객용 온천과 당일 입욕 온천이 분리가 되어 있는 타입이고, 이 당일 온천에는 탕이 총 2개 있다. 깊이가 조금 깊고 물 온도는 온탕 정도인 이 곳과,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열탕. 간단한 샤워시설과 비누 등도 준비되어 있어서 씻고 들어가면 됩니다요.

 

 

 

 

 

 

우리는 구매하지 않았지만, 온천 마패 구경은 합시다. 이렇게 3회 입욕을 다 하고 도장까지 받은 마패들은 기념품으로 가져가기도 하지만, 이렇게 소원을 써서 신사에 매달아두기도 한다. 저 중에는 '쿠로가와 온천 마을에 다시 오게 해주세요' 라는 소원도 있지 않을까 :)

 

 

 

 

 

 

다들 목욕 마치고 파티세리 로쿠에 간식 추가 구매하러(...) 달려간 새에 나는 잠시 바로 옆에 있는 신사를 둘러보았지. 아까 산 간식, 체크인해서 티푸드로 먹는다더니... 목욕 후에 화롯불가에 모여 앉아서 단박에 해치워버리셔서... 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소리를 남발하게 만들었던, 구마모토의 상징 쿠마몬! 정말이지 일본의 캐릭터 장사에는 혀를 내두르게 된다. 대단한 상술인데, 또 기꺼이 넘어가주고 싶어진다니까. 우선, 우리는 쿠마몬 수건을 다 같이 기념품으로 구매했으며, 간식은 로쿠에서 샀으니까, 쿠마몬 과자는 넘어갑시다...

 

 

 

 

 

 

온천욕하면서 신난 쿠마몬! 아, 인간적으로 이거 너무 귀여운 거 아님미카 ㅋㅋㅋㅋㅋㅋㅋ 액션은 신났는데, 표정은 엇비슷하게 늘 띨빵한 게 뽀인뜨 ㅋㅋㅋ

 

 

 

 

 

 

온천 원숭이와 사이좋게 입욕하는 쿠마몬 ㅋㅋㅋ 그러고 보니 이 그림에서는 웬일인지 웃는 표정이네 그려 ㅋ

 

 

 

 

 

 

그리고 주류를 판매하던 상점에서 쿠마몬 빅뱅! 디자인 심하게 귀여워서 저걸 살까 생각도 했지만, 이건 사케가 아니라 쇼쥬였던 고로... 디자인 요소 하나 때문에 쇼쥬를 고르기에는 남편과 내가 너무나도 굳건한 사케 애호가들이지... 그래도 이쁘니까 사진으로 꼭꼭 눌러담아오자.

 

 

 

 

 

 

룰루랄라 술을 구매하고 밖으로 나오니 정민느가 가게 앞 벤치에 널부러져 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직진본능으로 두다다다 걸어갔다가, 도착하면 일단 앉을 곳을 찾는... on/off 요정님 ㅋㅋㅋ 마, 힘내라. 우리 료칸 체크인하러 가자 ㅋ 그리고 이 와중에 구마모토 프리 와이파이 안내에도 또 쿠마몬 ㅋㅋㅋㅋㅋㅋㅋ

 

온천조합으로 돌아가서 30분에 한번씩 온다는 야마미즈키의 셔틀 버스를 기다려서 드디어 우리가 묵을 숙소로 이동을 했다. 마을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산길로 구비구비, 차로 한 10분은 넘게 들어간 것 같다. 그 구석진 위치 덕분에 정말 환상적인 노천욕이 가능했던 거지.

 

 

 

 

 

 

이것이 야마미즈키 료칸의 첫 인상 :)

 

 

 

 

 

 

우리가 묵을 10조 화실. (10조란 다다미 단위 기준으로 10개가 깔려있는 규모를 뜻함) 언제나 그렇지만, 료칸의 화실로 들어설 때의 기분이란 짜릿하다. (들어서면서 보이는 풍경을 영상으로도 찍어둘걸!) 다다미방이라서 추위 많이 타는 사람들이 밤에 잘 때 괜찮을까 약간 걱정도 했지만, 걱정은 미뤄두고 일단 방 구경 실컷 하고 목욕 갈 준비나 합시다~

 

 

 

 

 

 

할머니 직원이 방 구경을 시켜주고 녹차를 타준 다음에, 료칸의 구조 및 시설을 설명하시는데, 어차피 나보다 일본어 단어 몇 개라도 더 아는 사람들이 듣는 게 낫지 싶어서 '내용은 너네들이 듣고 숙지해서 알려줘, 난 사진 찍는다' 라고 선언해버리고 카메라 들고 돌아다님... 분업 체계랄카효...

 

 

 

 

 

 

'쿠마몬 잇빠이데스네'

 

사실 뭔가를 그리 다양하게 산 것도 아닌데, 이 차 마시는 공간에 쿠마몬 수건만 4장이 나란히 걸려 있으니, 쿠마몬에 미친 여자들인가 싶었을지도-_-? 아 원래는 바깥의 숲 풍경을 바라보면서 고즈넉하게 다도를 즐기는 공간일 터인데... 으하하하.

 

 

 

 

 

 

온천을 실컷 즐기고 와서 따끈하고 노곤해진 몸으로 저녁식사에 내려갔다. 야마미즈키는 비교적 규모가 있는 료칸이다 보니 (객실이 총 21개였던가) 각 객실마다 이렇게 꽤 넉넉한 식사 공간을 배정한다. 조식 역시 다 같이 홀에서 먹는 개념이 아니라, 이 단독 공간에서 서빙되고. (식사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료칸 후기 포스팅에서 별도로 할 예정.)

 

 

 

 

 

 

여행 오기 전에 금주를 명받은 자와, '한 입 잡솨'를 조장하는 인간. 그런데 진짜 저 주석잔에 차갑게 담겨나온 나마비루는... 하아... 이번 여행 통틀어 나의 '최고의 한 입'이었다. 맥주가 맥주니까 맥주 맛이 날지언대, 세상에 뭐가 이리 맛있지??? 결국 '30분에 한 모금'만 맛보겠다던 민느는 5분 후에 '40분은 족히 지난 것 같다'며 또다시 맥주에 손을 뻗게 된다... 그나마 금주령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에서 딱 5모금으로 그쳤지, 아니었더라면 음주 대잔치가 됐을 것이여.

 

 

 

 

 

 

료칸 숙박의 또다른 즐거움. 식사 혹은 목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두툼하게 펼쳐진 이부자리! 다다미방 특유의 냉기 때문에 이불과 요가 충분히 두툼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 탓도 있겠지만, 여하튼 저 폭신한 풍경은 언제 봐도 참 좋다. 일부는 잘 때 좀 추웠다고도 하던데, 나는 이불 속에 잘 묻혀 있으면 추운 줄은 딱히 모르겠더라고. (내가 그냥 잘 자는 건가...)

 

 

 

 

 

 

저녁 먹고 또 온천! 낮 시간에는 노천탕 옆으로 강이 콸콸 흐르고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는 풍경을 눈으로 즐겼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는 그 강의 흐름을, 숲의 기색을, 온천수가 조용히 찰랑이는 소리를 귀로 즐긴다. 머리로는 서늘한 숲 속 공기가 감돌고, 몸으로는 따끈한 온천수가 흐르니, 모든 감각이 느슨해진다.

 

그렇게 검은 강의 마을, 쿠로가와에서의 밤을 맞았다.

 

 

 

 

 

 

 

  

 

 

 

여행 후기는 미루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번 일본 여행 후기는 후딱후딱 사진 위주로 얼렁 올려보자! ... 라고 해봤자 또 중간중간 말이 길어질 나 자신을 난 잘 알고 있지... 여튼, 중간중간 부족한 게 있더라도 발빠르게 업로드해버리자는 게 취지입니다요. 테마별 상세 후기는 필요시에 따로 쓰고, 일단은 2박 3일 일정을 하루씩, 시간 순서대로.

 

(같이 찍은 사진들이 중간중간 나오는데, 얼굴 공개 꺼리는 애엄마 둘은 스티커 처리하고, 뭐 초상권에 연연치 않는 블로거 민느양은 마구 실사 방출 ㅋㅋㅋ)

 

 

 

 

 

 

아기다리 고기다리 우리 여행 출발일! 우여곡절도 많았으나 어찌 되었든 드디어 떠난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야심차게 제주항공 체크인 데스크를 향해 직진하는 민느와 밍기. 문제는, 이 분들이 너무 직진만 하셔서 ㅋㅋㅋ 중간에 뒤에서 방향 설정을 해드려야댐 ㅋ 거기서 왼쪽이요, 잠깐 스톱, 저기서 에스컬레이터 올라가요, 등등... 실제로 동영상에서 '왼쪽이요, 왼쪽' 이라며 남편이 목소리 등장하셨지...

 

 

 

 

 

 

무사히 체크인 완료! 발권 대기도, 면세 픽업 대기도, 시간이 길어질 거라고 빡쎄게 예상을 하고 시간을 잡았던 덕에 중간중간에 깨알 같은 시간 여유가 생겼다. 이래서 일정을 짤 때는 앞뒤 빡빡하게 할 게 아니라, 여기저기에 버퍼를 둬야 하는 건가봐. 게다가 가장 우려했던 지방 거주자님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 예정이라고 하니, 기획자 및 인솔자(?)로서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퓨퓨.

 

저 Tripful 매거진은 마침 첫 호가 후쿠오카를 주제로 발간됐길래 여행 이틀 전에 주문했다. 떠나기 전에 표지 한번 못 펼쳐보고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사이즈도 적절하고 편집도 여유롭게 잘 되어 있어서 마음에 듭디다. 물론 딱히 거기에 기재된 정보대로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출발 이틀 전에 난데 없는 대마왕 뾰루지가 애매하게 터지는 바람에 난 요모양 요꼴이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 (사실 흔적이 저렇게까지 거대한 건 아니었는데, 최대한 회복을 시켜보고자 붙인 습윤밴드 사이즈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것도, 일본을 가는 것도, 심지어 후쿠오카 방문조차도 처음은 아니지만... 거의 15년째 알고 지낸 이 여자들과 함께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야! 졸업, 취업, 시험, 중간중간의 연애, 결혼, 육아, 진급 등 각자 인생의 중요한 시기들이 다 미묘하게 엇갈려서 동시에 'Go-!' 를 외치고 해외 여행을 훌쩍 갈 수 있는 시기는 좀처럼 없었다.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고 일정이 바쁜 와중에도 촘촘하게 수다 떨고, 시간 내서 만나고, 때로는 함께 스튜디오까지 대여해서 사진도 찍고, 호텔을 1박 예약해서 함께 숙박하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교집합이 모여서, 드디어 함께 떠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심지어 4명 중 절반인 2명이 아기 엄마, 그 중 1명은 애 둘의 엄마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번 여행은 즐거움의 총량이 100% 라면 그 중 51% 정도는 - 나의 동행자들의 행복이 나에게 투영되면서 스며드는 반사적 즐거움... 이었다. 요컨대, 니가 좋다고 하니 나도 좋아!

 

 

 

 

 

 

그리하여, 누군가는 야근하느라 미뤄둔 잠을 자면서, 누군가는 간만의 육아에서 해방됐음을 만끽하면서, 누군가는 최근에 가장 큰 즐거움을 주었던 음악을 들으면서, 또 누군가는 후쿠오카를 예습하면서... 각기 자기 할 것을 하면서도 온전히 다 함께, 우리 여행의 첫 경유지인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하카타역으로 가야 하는데, 지하철을 탈까? 버스를 타도 괜찮아? 우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을 할까? 뭘 하든 간에 다 같이 사진 찍게 일단 좀 모여봐! (그러고 보니 이 사진은 왜 이리 유독 얼룩덜룩하게 나왓지... 게다가 난 비행기 안에서만 하고 있을 요량이던 습윤밴드 아직 안 뗐다...)

 

아마, 이 여행을 올해가 아니라 3년 전에만 왔었더라면 난 매 단계마다 조금씩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후쿠오카 국제공항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온 데다가 내가 길을 그리 생생하게 기억하는 편은 아니라서 셔틀 타는 곳이 어딘지, 지하철 연결 통로가 어딘지, 이런 디테일은 생각이 안 나서 일일히 확인하고 지도를 봐야 했거든. 내가 '인솔한다'고 인지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모든 걸 파악하지 못하고서 일일히 알아보고 연구해야 한다면, 아마 예전의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을 거야. 그런데 언젠가부터 '괜찮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과정이고 추억 그 자체다, 게다가 이 사람들도 그걸 다 알고 있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인지하고 나서부터 나의 마음 속이 더 널찍해졌지.

 

우리 저기 가서 지도 보고 가자! 그래! (가방 끌고 돌돌돌) 우와, 여기로 가면 되나봐! 맞네, 대박! 가자! 이런 순간 하나하나가 사진에도 영상에도 기록되지 않을지언정, 그 여행의 순간이고, 기록이고, 추억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물론 그럼에도 성정상 꽤 바쁘게 뽈뽈거리고 다니긴 하지만...)

 

 

 

 

 

 

캐리어가 좀 낡은 듯도 한데, 일단 아주 오랜만에 (아니,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여자친구들끼리 떠나는 여행에 신나서 일단 뭐든 간에 챙겨가지고 나온 여자.

 

'난 쇼핑할 거 별로 없고 짐도 적은데 집에 있는 캐리어가 너무 크네. 그렇다고 메는 가방은 번거로우니까 자리가 남아도 좀 큰 캐리어를 쓰자'라면서 끌고 온 여자.

 

채도 높은 색상을 좋아하고, 물건을 그리 아껴쓰지 않으며, 게다가 부부가 쌍으로 출장/여행을 자주 다녀서 각종 수화물 표가 덕지덕지 붙은 캐리어를 사용하는 여자.

 

작년에 세상이 무너져내려도 기필코 크로아티아 여행을 가겠다며 티케팅 2회 무산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고급형 새 캐리어를 구매했으나 아직 본격 개시 못한 여자.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카타역에 도착하고 나니, 숙소 체크인까지 애매하게 1-2시간이 남아서, 그렇다면 이때 점심을 먹자! 는 데에 모두가 동의하여... 숙소 가는 방향에 있는 '우오베이 스시'로 진격하였지. 아니, 원래 1안이던 '효탄 스시'가 대기줄이 하도 길대서 시간과 동선 효율화를 위해서 여기에 온 건데, 여기에도 대기줄이? 하지만 테이블 순환이 생각보다 빠른 데다가, 다들 캐리어 끌고 굳이 다른 건물로 가봤자 딱히 더 마음에 드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거슨 옳은 선택이었다.

 

 

 

 

 

 

터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바 타입의 좌석에 나란히 앉는 거라서 둘둘씩 나눠 앉는데, 아니 그렇다면 음주 2인끼리는 당연히 뭉쳐야디효 ㅋㅋㅋ 사실 나는 반주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혼자서는 안 마시는 타입인데, 육아 탈출 1인께서 '마치 내일이 없는 것 마냥' 먹고 마시는 모드라서! 내 기꺼이 응대해드렸고요?

 

'언니, 일단 나마비루는 너무 마시고 싶고 (그렁그렁)'

'어, 마셔마셔, 뭐든지 다 시켜, 내가 다 같이 마셔줄게'

 

내 같이 맥주잔 기울여드리는 것으로 그대의 여행을 즐거이 해드릴 수 있다면야, 까이꺼 뭐 어려울 것 있겠소 ㅋㅋㅋ 그리하여 첫 라운드는 나마비루와 하이볼로 시작쿠-

 

 

 

 

 

 

각각 장염과 위궤양의 여파로 금주 명령을 받으신 2인께서는 모여 앉아서 비음주 초밥으로 열심히 달리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장염/위궤양 여파가 있었던 사람들 치고는 밥은 너무 잘 먹었는데들-_-???

 

 

 

 

 

 

후쿠오카에서 보내는 단 하룻밤이자 우리 여행의 첫 날 밤은, 하타카역 남단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에어비앤비' 룸으로 정했다. 물론 이 주말에 일정 가격대 이하의 어지간한 호텔 룸들이 다 만실이었던 탓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정말 이번 여행의 베스트 초이스 중 하나! (그런 의미에서 에어비앤비 후기는 별도로 자세히 올릴 예정이지...)

 

에어비앤비 사이트에도 거의 호스트 Arisa님을 향한 러브레터 수준의 후기를 올렸지만, 뭐랄까, 여기에서 묵은 시간은 '숙박업소에서 묵은 1박'이 아니라 마치 '자취하는 친구네 집에 모여서 파자마 파티하고 논 주말 밤' 같았다. 심지어 사진에 미화가 없었어! 실제 공간과 사진이 동일해! 화장실/욕실/청소상태 등은 되려 실물이 더 나아!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 포스팅에서 풀어내는 걸로 하고, 후략.

 

 

 

 

 

 

숙소에 짐들을 내려놓고, 잠시 쉬면서 재정비도 하고, 이제 좀 더 가뿐한 상태로 캐널시티를 향해 가봅시다! 대형 쇼핑몰인 캐널시티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된다, 식이었지만 다들 '프랑프랑'에 눈을 반짝여서 그렇다면 의기투합해서 가보기로!

 

 

 

 

 

 

가는 길은 꽤 단순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사람을 끌고 간다는 사명의식이 구글맵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걸어갔다. 가는 길에 보였던 가게와 카페 풍경들은 언뜻 '여기가 광화문인가, 후쿠오카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감상을 나누면서 넷이서 꼬물꼬물 걸어가는 것조차 나에게는 충분히 '여행의 기분'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과도하게 낙천주의자인 걸까.

 

후쿠오카역 앞 사거리에서는 DHC 외판원 아가씨한테 샘플도 받아들고, 사진 찍어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에 선뜻 폰을 맡겨서 (셀카 아닌) 4명의 단체샷을 찍기도 하고, 뭔가 하나하나 난데 없고 뜬금 없지만, 아 모르겠다, 그냥 다 좋다. 그대들이 기뻐해서 나도 너무나 신나고 보람차다. 이렇게 내가 신나고 보람차 하니까 그대들은 한층 더 즐겁다.

 

 

 

 

 

 

그리하여 도착한... 프랑프랑이라는 이름의 쇼핑 개미지옥. '후쿠오카 가면 프랑프랑 매장은 필수죠' 이런 의견은 귓등으로 흘려듣는데, 마침 다 생활소품에 관심 많은 데에서 교집합 빅뱅해서 결국 우리도 여기에 오게 되었네. 매장에서 뒤로 돌기만 하면 한국어가 들린다는 ㅋㅋㅋ 한국 여성 관광객들의 종착지 같은 ㅋ 프랑프랑...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곳입디다-_-b

 

 

 

 

 

 

1순위로 3/4의 눈길을 빼앗은 건 역시나, 미키마우스 3절 접시들! 이미 해외 직구까지 해서 이 그릇을 애용 중이던 민느와, 아이가 있어서 멜라민 소재 및 화사한 색상의 분할 접시에 관심이 많은 2인이 죄다 여기로 달려가서 색상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난 이 접시는 취향은 아니지만, 왠지 남이 고르고 구매하는 걸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즐거운 거???

 

 

 

 

 

 

비행기 수화물 부칠 걱정만 없었더라면, 예쁜 찻잔 몇 개 쯤은 샀을지도 몰라. 그러나 오늘은 이렇게 눈요기만 하고 갑니다...

 

 

 

 

 

 

보는 순간, 사야만 했던, 코덕 풍 무늬의 테리 손수건. 구매자의 성향이 반영되며, 실제로 활용도가 높으며, 가격이나 부피가 부담스럽지도 않은 물건... 내가 생각하는 여행지 기념품의 이상적인 스펙이로고만. 후후후.

 

 

 

 

 

 

밍기가 매우 마음에 들어했던, 캐널시티 분수쇼. 그래서 우리 여행 영상에도 이 장면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넣었단다. 심지어 나중에 애니메이션 '원피스' 테마의 분수쇼를 한다고 하니까, 그게 보고 싶어서 마구 뛰어가서 사람들 사이를 기웃기웃했던 너. 왠지 잠시 딸내미를 데리고 디즈니월드에 온 부모 심경을 1%나마 알 것 같았어...

 

 

 

 

 

 

기대에 비해서는 딱히 볼 것도 살 것도 없었던 무지 매장. 카레 등의 즉석식품류가 한국에서 워낙 비싸니까 가격차가 많이 나면 여러 개 사올까 했는데... 아니, 뭐, 그건 일본에서도 비싸더라고... 아마도 무지가 한국에 런칭하기 전이라면 여기에서 눈 깨나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캐널시티 지하에 있는 드럭스토어 '마쓰모토키요시'는 가격이 미묘하게 비싸서 구경하고 주요 품목 가격 확인만 해보고 패스! 어차피 여행이 이틀이나 더 남았으니 웬만한 쇼핑은 마지막 날 텐진에서 몰아서 하는 걸로!

 

 

 

 

 

 

사실 뭐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 막상 밍기는 세잔느 치크를 구매했었네? 하긴, 얘는 마지막 날 텐진 쇼핑을 안 했으니까 여기에서 미리 사기를 잘 한 셈이지. 세잔느 치크, 가격도 저렴하고 케이스도 가볍고 브러쉬도 내장되어 있으며 발색도 맑고... 쏼라쏼라... 여튼 너 잘 샀어 ㅋㅋㅋ

 

 

 

 

 

 

자, 다들 쇼핑 미션도 완료하셨고... 이제는 가장 중요한 일과가 남아있따. 바로 (음주를 겸한) 첫 날의 저녁식사! 메뉴는 후쿠오카식의 곱창전골인 모쯔나베로 정해놓고, 식당은 어딜 가든 괜찮다, 는 식이었는데... 하, 그게 우리가 가고 싶다고 가지는 게 아니었어... 몇 군데를 시도해도 다 만석... 혹은 식당 자체를 찾을 수가 없어 ㅋㅋㅋㅋㅋㅋㅋ 하카타 시티 건물 이렇게 구조 복잡했나요...

 

일행 중에서 가장 곱창전골이라는 메뉴에 관심 없는 내가, 되려 불타올랐다. 아마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였더라면, 괜히 내 욕심에 일행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일찌감치 포기했을 터인데, 다른 사람들이 먹고 싶어하는 듯 해보이니 쓸데없이 목표의식 불타오르고...?

 

결국 뭔가 다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먹거리 사서 숙소로 갈까, 라는 옵션이 1안으로 떠오르기 직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한 군데 더 시도해보자고 모두를 끌고 나섰다. 그나마 '혹시 몰라서' 그럴싸한 식당 여러 군데를 구글맵에 미리 표시해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그렇게 지친 모두를 이끌고, 구글맵을 돌려 돌려 가며, 바지런히 총총총 걸어서 도달한 골목에서, 식당 이름 못 찾아서 돌아설 뻔도 하다가 간신히 발견한 그 이름... 야마야! 밍기가 저기! 야마야! 를 외쳤을 때 다들 귓가에 나팔소리 쯤은 들려왔을 것 같다...

 

을지로입구 페럼타워에 있는 야마야의 체인? 후쿠오카 본점? 암튼 연계된 가게 같은데, 아니 뭐 알 게 뭐람 ㅋㅋㅋ 뭐가 됐든 여기가 오리지널이겠지. 그리고 우리가 다 함께 무사히 후쿠오카에서 모쯔나베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나 다들 지쳐 널부러진 사진은 남기고 봅시다. 카메라를 든 나만 빼고 죄다 어둠 속으로 아웃포커싱 ㅋㅋㅋ 그런데 이거시 진실이다 ㅋ 혼자 식당 찾겠다고 쫄랑쫄랑 앞서서 반쯤은 뛰어가는 여자 1인과, 피곤하고 발 아프고 졸렵고 왠지 숙소로 가고 싶지만 그 와중에 모쯔나베가 먹고는 싶은 여자 3인...?

 

 

 

 

 

 

이런 우리 모두에게, 치얼쓰.

이럴 때 마시는 첫 입의 맥주는 천상의 맛이지요.

 

 

 

 

 

 

식당을 찾아서 모쯔나베를 주문했다는 안도감, 오랜만에 많이 걸어서 놀란 발을 진정시키고 나니 찾아오는 편안함, 아늑한 조명과 테이블에 앉아서 느끼는 오늘 하루에 대한 뿌듯함, 주변에서 들려오는 일본어에 새삼 '우리가 같이 여행을 오긴 왔구나'라는 성취감.

 

그리고 전골냄비 안에서 고소한 모쯔나베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정다운 소리까지.

 

 

 

 

 

 

곱창이라는 메뉴를 원래 좋아하는 이도 있다.

혹은 나처럼 내장류를 즐기지 않는 이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곱창을 덜 선호하면 맛만 보고 두부와 배추 위주로 즐기고, 무엇보다도 맥주를 마시면 되는 것을. 그보다 이 아늑하고 즐거운 자리에 모두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평소의 일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거면 됐지.

 

 

 

 

 

 

술을 물처럼 마시는 2인과, 물을 술처럼 마시는 2인의, 합동 건배! 중간에 이럴까 저럴까 망설인 때도 있었고, 누군가는 발이 너무 아파서 더이상 걷고 싶지 않았던 때도 있었겠지만, 결국 이 하루의 마무리는 이렇게 다 같이 하는 건배로 기록되는 거다. 이것만으로도, 야마야까지 찾아온 보람은 차고도 넘친다.

 

 

 

 

 

 

게다가 -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면서 호쾌하게 카운터로 걸어가시는 이의 뒷모습은, 아니 옆모습 앞모습까지도! 360도 파노마라 써라운드로! 어찌나 아리따우신지?! 그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 결제의 순간조차 놓치지 않고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고요-_-v

 

 

 

 

 

 

어찌 보면 여행 가서 '먹는 것'이 마냥 중요한 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다만, 모든 순간을 하나하나 다 담아두기에는 인간의 기억이 미약하여, 결국 하루를 통틀어서 '마디가 되는 장면' 위주로 기억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대개 차분하게 한 자리에 앉아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오감 중 하나를 채우는, 이른바 식사 시간이 되기 쉬운 거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은 '먹으러 가는 것'만은 아니지만,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긴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은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후쿠오카 파워 워킹 일정의 끝에, 간신히 찾아낸 오아시스 같던 우리의 모쯔나베 식당 '야먀야'는 기억 속에 진하게 남을 것 같다. 이 하루의 기승전결에서 '전'과 '결' 사이를 이어준, 그런 마지막 디딤돌로.

 

 

 

 

이렇게 후쿠오카 하카타역 인근에서 보낸 여해의 첫 날 후기까지 마무리... 헥헥. 아, 역시 짧게 간단하게 써서 일단 업로드하고 보겠다던 나의 계획 따위 골로 갈 줄 알았어, 내가. 하지만 계속 기운 내서, 이틀째 사흘째도 열심히 써보겠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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