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닌 말이나 생각이라고 해도,
그 순간의 상황이나 기분과 겹치면서,
왠지 기억에 깊게 남을 때가 있곤 하지.
지난 달,
지긋지긋한 무더위가 한차례 물러나고
초가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초저녁에,
여의도 모처 야외 테라스에서 지인들과 함께
시원한 생맥주와 밀린 수다를 떨고 있던 중에.
친한 선배 왈,
'넌 진짜 할 말 다 하고 살아서
국내 대기업에는 못 다닐 것 같다.'
(참고로 전혀 기분 나쁜 소리 아니었음 ㅋㅋㅋ
실로 나도 이에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거니와 ㅋ)
그때 난 마침 립컬러를 덧바르려고
가방에서 이 립스틱을 꺼내고 있었다.
바로 이거.
RMK 올해 봄 신상/한정.
이리지스터블 립스 EX-05 브라이트 코랄
스아실 이 코랄코랄한 립스틱은 사려던 게 아니라
2016 S/S 컬렉션의 버건디 섀도우에 뒤늦게 꽂혀서
고민-대리구매-품절-절망-고민-재주문... 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립스틱도 같이 삼;
뭐랄까, 섀도우도 진짜 어렵사리 구해서 구매하는 건데,
그거 하나만 달랑 주문하기는 허무했달까... 뭐래... 닥쳐...
암튼, 그래서 난데없이 이런 코랄 립스틱이 생겼는데...
당연한 소리지만, 나한테는 도통 안 어울리는 색이었다;
아, 뭐, 내가 하도 핑키쉬 레드 컬러들만 가득 있는지라
이런 코랄도 하나쯤은 있으면 막 유용할 줄 알았지???
그러나, '예쁜데, 나한테는 안 예쁜' 전형적인 예였달까...
암튼!
여의도의 그 저녁, 그 순간에 난 이 제품을 꺼내들었고,
선배의 얘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기분으로 이걸 발랐는데
말해 뭐해... 안 어울려...
음식 먹다가 립컬러 다 지워진 상태가 어째 나은 듯도...
그러면서
왠지 그 순간이 기억에 남아버렸다.
안 맞는 옷,
안 맞는 직장,
안 맞는 립스틱,
'남에게는 좋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안 어울려'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초가을의 저녁 산들바람.
이 모든 감각이 얽혀서, 별 거 아닌데 기억에 남는다.
기억만은 남았지만,
립스틱은 가셨구랴.
(웜웜한 이뮤에게 투척해버려서 현재는 내 손에 없음-_-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발색샷조차 찍어둔 적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