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소위 파스타 맛집들은 계속해서 '롱슐랭'

 

그러니까

나의 친애하는 지인

(이자 입도 짧고 취향도 까탈스러운...)

이해롱 슨생의 추천을 따라서 가고 있다.

 

이런 맹목적인 신뢰의 근거는 역시나 -

'그 까탈스런 기지배 입에 맛이 있다면

정말 맛이 있는 거겠지' 라는 논법이랄까.

 

지난번 합정의 빠넬로도 그렇고 (클릭!)

이번에 다녀온 이대후문의 지노도 그렇고

롱슐랭의 신뢰도를 쌓아올리고 있는 중! :)

 

사실, 밖에서 사먹는 파스타는 늘 미묘해서

어설픈 가격과 맛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집에서는 워낙 휘리릭 쉽게 만들어 먹고,

심지어 재료도 내 마음대로 양껏 넣으니,

'에이, 그냥 내가 집에서 해먹는 게 낫겠다'

생각이 안 들려면 (=본전 생각 안 나려면)

평균보다는 확실히 맛이 좋아야 한다는 것.

 

 

 

 

 

 

지노 프란체스카티

Zino Francescatti

 

이름 길기도 해라. 약칭 '지노'로 불린다.

내가 방문한 이대 후문 이곳이 본점이고

그 외에 파주에도 지점이 있다는 것 같음.

 

저 길고도 난해한 이름은

작고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는 걸 나도 다녀온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ㅋ)

 

실로 이 레스토랑의 분위기 또한

바이올린 연주 선율 같은 면모가 있다.

 

고요하고, 우아하고, 정제되어 있고,

혹자는 그 섬세함을 높이 평하겠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사실 말하자면,

나도 평소에 찾아서 가는 류의 식당은 아니다.

 

다만,

정말 믿을 만한 음식 추천이 있었던 데다가

위치도 마침 남편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퇴근 후 데이트를 해보자'면서 점찍어두었지.

 

막상,

차를 끌고 나온 주말 저녁에 가게 되었네...?

 

 

 

 

 

 

지노 프란체스카티

02-365-5554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84-1

(이대 후문과 연대 세브란스 병원 사이)

 

 

 

 

 

 

연이은 블루리본 서베이 선정...

블루리본에 딱히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출입문에 붙여놓기에는 괜찮은 홍보구먼.

 

 

 

 

 

 

그러니까,

가게에 들어서면 바로 이런 분위기다.

 

인테리어는 상상했던 것보다 로코코하였고,

음악은 기대 외로 바로크 하프시코드였으며,

전반적으로 격식 있고 고요한 분위기... 였음.

 

데시벨 스트레스가 심한 나로서는

이 고요함과 정제됨이 반갑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엄숙한(?) 분위기에 조금 놀랐다.

 

뭐랄까,

단지 '맛있는 파스타!'를 찾아서 오기에는

다소 문턱이 높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고풍스러운 액자들.

 

 

 

 

 

 

은은한 간접 조명들.

 

 

 

 

 

 

평일이 아닌 주말,

조금 이른 저녁 시간에는

이렇게 한적하고 널찍한 좌석들.

 

자리에 앉으려고 의자를 빼는데

가구의 소재가 제법 묵직한 것이어서

끼익- 하고 제법 큰 소리가 울려퍼졌고

유독 조용한 분위기여서 더 신경 쓰였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고 하면서도

와글와글하는 현대식 펍 분위기에

그동안 내가 너무 익숙해진 걸까...?

 

 

 

 

 

 

이 날은 마침 결혼식에 다녀온 후라서

간만에 의도치 않게 DSLR을 구비한 상태!

 

딱히 레스토랑 리뷰를 올리려는 건 아닌데

손에 카메라가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네.

발사믹 비네거 하나까지 왠지 찍어줘얄 듯...

 

 

 

 

 

 

갓 구워나온

따끈하고 향긋한 식전빵.

 

너무 무르거나 버터리하지도,

너무 딱딱해서 먹기 불편하지도 않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담백하고 고소한.

 

 

 

 

 

 

샐러드는 기본에 충실한 시저 샐러드.

상당히 단촐하고 만들기 쉬운 동시에

재료 의존도가 높은 게 바로 시저 아닌가.

 

재료를 잘 쓰는 집이라고 하니까,

다른 화려한(?) 샐러드들을 미뤄두고

오늘은 시저로 실력을 가늠해봅시다.

 

과도하게 멋 부리지 않아서 좋았고,

드레싱도 너무 강하지 않아서 좋았다.

로메인의 상태도 중상급 이상으로 합격.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크루통이 너무 딱딱했다는 것 정도?

 

파스타를 먹기 전에 시원하고 가볍게

입맛 돋우는 역할로는 부족함이 없었네.

 

 

 

 

 

 

Risotto al Tartufo

송로 버섯 리조또

 

남편의 선택은, 트러플 리조또.

 

이 날의 메인이 로제 소스의

꽃게 비스크 파스타였으니까

이에 균형을 맞춘 메뉴 선택이었다.

 

송로 버섯이 얼마나 비싼지 익히 알기에

대개는 주문하면서도 기대치가 높지 않다.

 

뭐, 비슷한 향만 나면 면피하는 거지... 라는 식.

 

그런데, 놀라버렸다.

한 입 먹을 때마다 트러플 향이 듬뿍 나서.

 

'트러플 향이 조금 더해진 리조또'가 아니라

'트러플 향을 먹는데 식감이 리조또'인 기분?

 

'이건 어차피 실력보다는 재료 맛 아니냐'

라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트러플...)

다른 어느 식당에 가서 2만원 초반 디쉬에서

이런 풍성하고 향긋한 트러플을 느낀 적 있던가.

 

그리고,

혀 끝의 기억에 남는 음식이라니.

이것만 해도 이미 충분히 변별력 있지 않은가.

 

음, 말이 긴데, 여튼 훌륭합디다.

남편과 나의 평은 : 중상상 정도.

별점으로 치환한다면 : 4/5가 되려나.

 

 

 

 

 

 

Spaghettini Granchio Bisque

꽃게 비스크 파스타

 

하지만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여기에 있지.

게살을 넣은 로제 소스의 꽃게 비스크 파스타.

 

아니, 그런데 맛이 훌륭하다고는 들었건만

비주얼도 이렇게 압도적일 줄은 미처 몰랐네!

 

정성스럽게 또아리(?)를 튼 스파게티니 면을 품은

꽃게 한 마리가 통째로 나와서 단박에 시선 집중!

 

무거운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나 혼자 들뜬 것 같아도

이건 당장 일어나서 항공샷(!)을 찍어야 마땅해!

 

 

 

 

 

 

아..안녕하세요?

 

 

 

 

 

 

꽃게 파스타의 비주얼, 그 너머의 남편.

문득, 송로 리조또가 참 소박해보인다...?

 

 

 

 

 

 

설령 맛이 그리 특별나지 않더라도,

그냥 평범한 토마토 소스 파스타라도,

 

이 정도 비주얼과 정성이면

어쩐지 다 이해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랬다면, 사진은 신나게 찍어놓고,

후기는 심드렁하게 썼을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맛도 있다는 것, 그것도 대단히 좋다는 것.

심지어 확실히 차별화되기까지 한다는 점.

이게 이 메뉴의 하이라이트 되시겠다... 핡.

 

 

 

 

 

 

게살이 맛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껍질을 까고 다리를 까먹기 버거로워서;

우리 둘 다 평소에 찾아먹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왠지 정성을 다 하고 싶어진다아...!

설령 끝까지 못 먹고 좀 남기면 엇더하리잇고.

 

 

 

 

 

 

... 하지만 굳이 남기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몸통살은 워낙에 잘 발려서 소스에 들어가있고

다리살은 이렇게 전용 도구로 긁어 먹으면 된다.

 

보드랍고 촉촉하게 익어서 꽉 들어찬 게살을

열심히 모아모아, 파스타에 얹어서 한 입 가득!

 

 

 

 

 

 

인증샷을 절로 부르는 메뉴 아닙니카...

 

하지만,

첫 인상이 압도적인 꽃게 비주얼이었다면

진짜 기억은 재료 맛의 절묘한 조화... 였다.

 

직경이 가늘고 알맞게 익은 스파게티니는

입자가 작은 게살과 소스와 합이 좋았고,

 

게살의 맛과 풍미는 풍부하게 살리면서도

전제적인 간은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았으며,

 

면 뿐만 아니라 게 자체도 보드랍게 조리되어

어렵지 않게 발라내서 한 입에 먹기에 좋았다.

 

아, 잘한다. 이 집, 파스타 정말 잘 만든다.

식재료들을 균형있게 선택하고 사용하며

본연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실력이 대단하다.

 

'언니, 그 집 꽃게 로제 파스타가 최고야'

라는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메뉴 추천을 받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고,

엄숙한 인테리어에 조금은 부담스러웠으나,

 

맛, 음식의 맛, 너무나도 뛰어난 조리 실력이

이 집의 최종 인상을 한꺼번에 결정해버렸다.

 

 

 

 

 

 

매우 만족스럽게 결제하는 그의 모습...

 

 

 

 

 

 

우리의 감탄, 그 기억을 담아...

Zino Francescatti.

 

 

 

 

위에서는

집중도를 위해서 음식 사진만 올렸고

메뉴판 사진은 아래에 별도로 올린다.

 

파스타를 1개 선택해서 주문하는

3-dish 평일 런치 코스는 26,000원

 

애피타이저와 샐러드는 대개 1만원대.

파스타는 1만원대 후반에서 2만원대.

 

다음에는 스테이크도 먹어봐야겠군...

 

 

 

 

 

 

 

 

 

 

 

 

 

 

 

 

 

  

 

 

 

 

서울에, 특히 청담동에 넘쳐나는 게 이탈리안 레스토랑.

물론 땅값 비싸고 유동인구 입맛도 까다로운 그곳에서

살아 남으려면 맛도, 컨셉도, 다 경쟁력 있어야겠지만

그래도 하다 많다 보니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그런데 그 상향 평준화된 소위 맛집들 중에서도

"여긴, 정말 특별히 맛있다" 라는 소리가 나온다면

다른 곳 다 제끼고서라도 단골 삼고 싶지 않겠는가.

 

 

 

 

 

 

여기가 바로 그곳.

 

라볼파이아, La Volpaia.

 

이탈리아어로 여우의 마을, 정도 되는가보다.

찾아보니 피렌체의 어느 마을 이름이라고 하네.

 

 

 

 

 

 

청담동 명품거리 딱 허리께 골목에 있다.

알고 가면 쉽고, 헤매려면 헤매일 수 있는 위치.

 

 

 

 

 

 

간판은, 의외로 이렇게 간단하고 소박하다.

 

 

 

 

 

 

와인 마니아를 위해

a.m. 2:00까지 오픈.

 

... 응? 누가 내 얘기하니???

 

 

 

 

 

 

영업 시간은

런치... 는 미정.

디너는 17:30 ~ 22:00

 

그리고 일요일은 온종일 오픈.

 

 

 

 

 

 

주말 점심,

일찍 도착한 자의 여유.

 

 

 

 

 

 

주방장 추천 메뉴인가요.

 

 

 

 

 

 

라 볼파이아.

그러고 보니 여우의 실루엣이네.

 

 

 

 

 

 

오, 이탈리아.

 

 

 

 

 

 

블로거 스피릿 돋는,

메뉴판 페이지별로 다 찍기 신공.

 

 

 

 

 

 

 

 

 

 

 

 

 

또 누가 궁금해할세라,

그걸 다 보여주는 신공까지.

 

그리고, 늘 그렇듯이 주문은 내 마음대로.

다들 군말 없이 뭐든 잘 먹어서 참 기뻐 ㅋ

근데 고르고 보니 거의 다 시그너처 메뉴들 :)

 

 

 

 

 

 

손님, 이 물은 드시면 안 됩니다.

 

 

 

 

 

 

Funghi al funghetto

작은 버섯 요리

(16,000원)

 

올리브 오일, 파슬리, 후추로 간을 한 버섯 요리.

워낙 버섯과 올리브 오일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이 애피타이저는 처음부터 뭔가 촉이 확 오던 메뉴다.

 

지극히 단순한 재료와 양념으로 맛을 내는 게,

라볼파이아 요리의 특색을 잘 나타내준달까.

 

이게 뭐라고,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싶겠지만,

그래도 이 집에 갈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 맛.

 

심지어 와인 안주로도 excellent -_-b

 

 

 

 

 

 

오일은 오일이로되, 올리브 오일이로다.

 

 

 

 

 

 

Insalata di calamari

오징어 샐러드

(15,000원)

 

드레싱이 강하지 않고, 루꼴라의 향이 그대로 난다.

평범한 것 같지만 루꼴라도, 토마토도, 올리브도,

모든 재료들이 다 잘 관리됐다는 게 느껴져서 좋아.

 

 

 

 

 

 

"주문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와인만 내가 도착하면 고를게."

 

... 그런데 시키려던 와인이 생각 안 나는 게 함정.

메뉴판에도 기재가 안 된 와인이어서 우왕좌왕하면서

가격과 맛, 패키지 등을 종업원에게 묘사하고 있던 차,

창가에 늘어서있는 빈 와인병 중에서 극적으로 찾아냈다.

 

 

 

 

 

 

그러니까, 기념으로 풀샷.

사진도 찍어놨으니까 다음번엔 잊지 마시라 ㅋ

 

Gran Coronas

Cabernet Sauvignon

2008

Familia Torres

 

 

 

 

 

 

가격은, 잘 모르겠다.

병당 10만원 미만인 건 확실한데.

가격대비 만족도가 대단히 뛰어난 와인!

 

맛은 세미-드라이해서 반주용으로 딱 좋아.

 

 

 

 

 

 

햇살이 따사로이 비치는 주말,

낮술이 주는 나른함을 즐겨봅니다.

 

잇힝.

 

 

 

 

 

 

Calzone Pizza

깔쪼네 피자

(22,000원)

 

햄, 치즈, 버섯, 올리브 등을 넣은 반달 모양 피자.

깔쪼네 피자야 다른 곳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만

화덕 피자 전문인 라볼파이아의 주특기이기도.

 

 

 

 

 

 

어따, 고놈 잘 익었네.

 

 

 

 

 

 

바삭하고 담백한 씬도우 사이로 보이는

윤기 좔좔 햄/치즈/버섯/올리브 필링 :)

 

 

 

 

 

 

이탈리안 치즈 공갈빵 ㅋ

 

 

 

 

 

 

Spaghetti con gamberetti e verdura

새우 채소 올리브 오일 스파게티

(20,000원)

 

올리브 오일 파스타를 잘 만드는 집이

진짜 파스타를 잘 만드는 집 아니겠는가.

 

맛나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음.

 

샐러드 채소 재료들부터 시작해서

기본에 충실한 화덕 피자는 물론이고

깔끔하고도 풍부한 맛의 스파게티까지

 

진짜 음식 제대로 만드는 곳이다, 라볼파이아.

 

 

 

 

 

 

 

 

맛난 음식과 끝내주는 와인에 탄력받았는데

3시부터는 저녁식사 준비시간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밖으로 나왔는데...

 

다들 아무래도 계속 와인이 땡기는 거다.

 

그런데 오후 3시에 와인을 파는 곳이 어디 흔하냐고;

이래저래 방황들을 하다가 보이는 첫 집으로 낙찰!

그리하여 라볼파이아에서 시작한 수다와 낮술은

또다른 낮술, 그리고 기어이 저녁술까지 이어졌다.

 

... 아름다운 하루에요.

 

 

 

 

암튼! 이번 포스팅의 주제가 산으로 가버리기 전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라볼파이야 진국... 이다.

메뉴 하나하나마다 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고

와인 셀렉션에서도 사장님의 취향이 느껴지는 곳.

 

인근의 수많은 다른 레스토랑들도 궁금할 수 있지만

난 기꺼이 그 호기심을 포기하고 다시 여기를 찾으련다.

 

 

단연코 돋보이는,

기억에 진하게 남는

 베스트 레스토랑.

 

La Volpaia.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