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로버트 A. 하인라인

역자 : 제각각...

출판사 : 시공사

형태 : 리디북스 e북

 

책 소개 :

 

SF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대부들 중 가장 대중적이고 다채로운 작품들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주요 작품들을 엄선하여 소개하는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세트』.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작품들을 통해 20세기 문학과 문화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미친 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글쓰기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랄한 정치 풍자극으로 하인라인 명성의 시발점이자 1956년 그에게 첫 휴고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더블 스타》, 하인라인의 다채로운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명작 단편 선집《하인라인 판타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상징이자 SF 소설을 주류 문학에 편입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또 다른 휴고상 수상작 《낯선 땅 이방인》, 시간 여행과 로맨스, 하인라인과 독자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쿨한 고양이 피트가 등장하는 인기작 《여름으로 가는 문》,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후보에 오르며 7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 만년의 걸작 《프라이데이》를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소개 :

 

로버트 하인라인은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와 함께 과학소설의 기틀을 다진 3대 거장(Big Three) 가운데 한 사람으로, 특히 스토리텔링에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클라크가 우주를 향한 원초적 동경에 충실했고 아시모프가 재기 넘치는 플롯의 달인이었다면, 하인라인은 개성적인 캐릭터와 역동적인 이야기를 조합해내는 데 천재였다.1907년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난 하인라인은 명예나 리더십 같은 군인의 도덕률을 흠모하다가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29년에 임관한 뒤 항공모함 렉싱턴 호 등에서 근무했지만 1934년에 폐결핵으로 의가사제대를 했고, 그 뒤 UCLA 대학원에서 수학과 물리학 수업을 들었으나 몇 주 만에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업튼 싱클레어가 민주당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전에 나갔을 때 그의 캠프에서 일하기도 했다.1939년 존 W. 캠벨이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Astounding Science Fiction에 첫 단편 「생명선」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그의 작가 경력은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일찌감치 SF계에서 자리를 굳힌 하인라인은 1947년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지구의 푸른 언덕」을 실으면서 SF 작가로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주류 매체에 자기 작품을 발표하였고, 그 뒤로 20세기 중반을 관통하며 40여 년 이상 최고의 SF 작가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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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휘갈김 :

 

하인라인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SF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사실 아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10대 때 탐독했던 아이작 아시모프 로봇 시리즈 소설들이 내 SF 세계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런데, 올해 상반기 북클럽에서 모 회원님이 했던 말 한 마디가 깊이 남았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논하는 날, 자칭 타칭 SF 마니아 한 분이 심도 있는 독서 체험과 SF 세계관으로 참석자 모두를 매료하였는데, 그가 말하기를 :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SF는 단지 미래, 로봇, 기계, 소위 공상'과학'을 소재로 다루는 게 아니라 상상력에 기반하여 나름의 질서를 갖추고 있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SF 애호가들에게는 이미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설명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유독 마디가 되는 말, 행동, 사람의 기억들이 있기 마련인데 SF에 관한 그의 조곤조곤한 설명이 나에게는 그러했던 모양.

 

그러면서 대표적인 SF 작가 및 본인이 개인적으로 애호하는 작가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를 해주었는데, 그 중에서 이 하인라인도 '고전적' SF 작가로 등장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당시에는 바로 찾아서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지난 달 리디북스에서 하인라인 걸작선 5권을 세트로 할인 판매하길래, 지금이 바로 때로구나 싶어서 바로 구매했음. 사실 출장 가기 전이라서 비행기에서 손쉽게 읽을 만한 소설을 찾고 있던 참이기도 했고.

 

꽤 페이지 수가 많은 책이 5권이나 묶음으로 구성된 거라서, 일일히 개별평을 쓸 생각은 없다. (저 중에서 딱 한 권만 골라서 읽는다고 하면 역시나 그의 대표작인 - 여름으로 가는 문.)

 

다만, 이미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1939년대에 데뷔, 1940-60년대에 전성기) 저술한 책들이라 그 당시에는 '미래'였던 시점이 이미 현재의 독자들에게는 '과거'가 된 시점이라는 점에서 오는 흥미점들이 많다.

 

아예 마법의 세계나 화성인 등 우주 소재를 중심으로 한 것은 덜하지만 시간여행을 메인 플롯으로 삼는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 가장 극명하게 느껴지는 부분. 저자로서는 '머나먼 미래'인 70년대의 '신기술'을 상상해서 쓰는 거지만, 현재의 화자가 보기에는 구 시대의 것과 상상이 뒤섞인 기묘한 결과물로 보인다는 것.

 

그리고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 또는 그를 위한 노력을 그리 많이 했음에도 당시의 성관념을 벗어나지 못했음이 여실히 보인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들은 보조적이고 수동적이며 선과 악으로 양분되는 2차원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점이 아쉽다기보다는 - 저자의 시간, 과거의 그가 상상했던 미래의 시간, 그리고 현재의 시간, 이 모든 시간들이 뒤엉키는 와중에 나름 흥미롭게 느껴지는 정도. (물론 1940년대 즈음에 활약한 그가 당시의 사회적 편견을 넘어서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기까지 했더라면, 그에 대한 평가도 한 단계 더 넘어서기는 했겠지만!)

 

SF 소설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기술'을 그려내는 것이라면, 하인라인의 소설 대다수는 이에 해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미래였을지언정 이미 지나간 시대를 그리며, 현재로서는 새롭지 않은 것 혹은 의미가 없는 것을 그려내기도 하니까. (심지어, 단편선 다수에서는 마법과 마녀, 지옥과 악마의 세계를 당연한 듯 묘사하기도 한다!) 공상'과학'소설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가 될지도.

 

하지만 이 작가는 장편이든 단편이든 매 작품마다 매번 저마다 법칙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제시한다. 게다가 그의 이런 작품의 영향을 받아 훗날 '백투더퓨처' 같은 작품이 탄생했고, 그런 매개체를 통해서 그는 후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상력의 문을 열어준 셈이다. 그렇다면, 실로 'SF' 걸작선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요약 : SF 클래식 맞습니다.

 

 

 

 

 

 

  

 

 

오늘은 독서일기 일종의 번외편이랄까.

 

문득, 서재를 정리하다가 낡은 페이퍼백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 본 책은 그때그때 중고 판매를 하든, 빌려주든, 누구에게 주든, 어떤 식으로 처분을 하는 편인데 그런데 이 낡은 책들은 어떻게 그 긴 세월 동안 내 책장에서 살아남았을까. 게다가 애당초 페이퍼백을 구매를 했다는 것은 오래 소장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가법게 읽고 떠나보낼 생각이 있었다는 건데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는 개별 책에 대한 후기가 아니라 내가 보유한, 내가 아끼는, 내 기억에 소중한 '페이퍼백' 책들에 대한 모듬 기록이다. 시간 역순으로 하나씩 들여다보자.

 

 

 

 

 

 

The Gone Girl

by Gillian Flynn

 

2015년 12월, 괌으로 떠난 휴가에서 정말 재밌게 잘 읽었던 책. 꼭 읽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떠나는 날 아침 인천공항에서 문득 구매했고, 덕분에 집에서 챙겨간 다른 책은 거의 펼쳐보지도 못했다.

 

책의 내용과 서술도 물론 훌륭하기 그지 없지만 (주저 없이 강추하는 바!) 난 이 책을 볼 때마다 괌 리프 호텔의 수영장 풍경, 뜨겁고 건조한 공기와 시원하고 찰랑한 물의 온도가 떠오른다. 휴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책이기도 하고, 아주 바쁜 와중에 훌쩍 떠나면서 문득 산 책이어서 그런지, 그 당시의 정중동, hard-earned holiday,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이 모든 기억이 녹아있는 매개체인 셈.

 

이때를 계기로 다짐했지. 휴양지로 쉬는 여행을 떠날 때에는 공항에서 '떠나는 기분'을 담뿍 느끼며 이렇게 페이퍼백 소설을 한 권씩 사가겠다고. 그 책 한 권에 내 휴식을 온전히 녹여보겠노라고. 책이 만족스러우면 만족스러운대로, 좀 아쉬우면 '아하하, 이번 책은 뭐 좀 허술하네' 이렇게 어깨 으쓱하면서 맥주 한 모금 홀짝일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느슨하게 즐길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언제 어디가 될지 모르는 다음 여행이 벌써 기대가 된다...

 

덧붙임. 이 책은 다 읽고 지인 나눔을 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읽어보겠노라고 해서 킵. 읽기 시작하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읽는 속도도 나에 비해서는 느릿한 남편인지라, 그가 이걸 읽게 되는 시점 또한 우리의 다음 해외 여행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The Great Gatsby

By F. Scott Fitzgerald

(Oxford World's Classics)

 

굳히 옥스포드 시리즈를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이 표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튼 수년 전에 우연히 구매한 게 바로 이 버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손때와 메모들이 가득해서 다른 어떤 멋진 하드커버 버전보다도 바로 이 책에 애착이 많이 간다.

 

내 생에 위대한 개츠비는 아마도 완독만 넛댓 번은 족히 한 것 같다. 그리고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랬듯이) 읽을 때마다 감상이 한 겹 한 겹 쌓여서 '아, 이 책은 정말이지 한 번 읽고 다 알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10대 때 처음 읽었을 때에는 '뭐야, 결국 유부녀가 된 옛 애인을 사모하다가 파멸로 치닫는 줄거리잖아' 하고서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도 있으니 원... ㅋ

 

이 책에 새삼스레 감명받았던 건 작년 봄, 출장 가는 길 비행기 안에서였다. (부피도 작고, 읽고 나서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도 안 들면서, 책장이 무겁지 않게 넘어가는 책이라서 출장용으로도 딱이다) 천천히 작품 속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아 여기 기억난다, 그래 이렇게 이어지다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묘사가 등장하지... 이렇게 기억을 되짚어가는 와중에 - 수년 전의 (몇 년 전인지도 모르겠다, 워낙 여러 번 읽은 책이라) 내가 똑같은 기분으로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둔 게 아닌가. 바로 지금 내 몰입도가 최고조인 바로 그 문장에, 그 표현에.

 

이야기의 화자인 닉의 시각을 따라가보는 것도 좋고, 저자인 피츠제럴드에 공감하는 것도 좋은데, 그 무엇보다도 감격스러운 건 바로 '이 책을 수년 전에 읽었던 그때의 나 자신과 교감'하는 것. 아, 역시 너도 나처럼 이 서술에 매료됐구나. 아마 몇 년 뒤의 나도 또다시 그럴 것 같아.

 

그리고 그 기억이, 감상이, 아울러 시간이 첩첩이 쌓이면서 이 책은 점점 나에게 불멸의 명작이 되어가는 거다. 나의, 위대한, 위대한 개츠비.

 

 

 

 

 

 

The Old Man and the Sea

By Ernest M. Hemingway

 

The Moon and Sixpence

by W. Somerset Maugham

 

왼쪽 페이지에는 영어 원문, 오른쪽에는 한국어 번역이 있어서 영어 교재의 고전이었던! YBM 시사 명작 시리즈! 그 중에서도 내가 꼽은 애착본은 (자그마치) 제1권인 노인과 바다, 그리고 '문장이 살아 숨쉬고 춤추는 듯한' 글의 매력을 일깨워준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

 

특히 노인과 바다는 20년은 족히 된지라 물 묻어서 쭈글쭈글해지고 커피인지 뭔지 얼룩도 묻어있고 책에서는 이제 거의 헌책방 냄새가 날 지경이지만, 이 대명작의 매력이 처음 내 마음 속에 격동쳤던 순간이 떠올라서 도저히 버릴 수가 없다. (아울러, 이 줄거리에 꽤 실망했던 10대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ㅎㅎㅎ) 위대한 개츠비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헤밍웨이의 인생 역작인 노인과 바다 역시 여러 번 곱씹어보고 세월 속에 묵혀야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작품 - 이런 걸 클래식, 명작이라고 하는 거겠지 - 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현재 30대인 나 역시 이 작품의 깊이와 농도를 제대로 아는 게 아닐 거라고도 생각해. 그러니까 두고 두고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소중히 보관해야지.

 

달과 6펜스는 초반에는 줄거리 진행이 꽤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다행히(?) 내가 이걸 한참 읽을 때 모옴의 문장에 흠뻑 빠져있을 때라 줄거리와 무관하게 충분히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아, 정말이지 그의 출중한 문장력, 묘사력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그 전율은! 그 느낌을 만끽하기 위해서 일부러 중간 부분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완독한 게 한두 번이 아닐 정도다. 어쩌면 모옴의 작품에 매료된 나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영향이 오늘날의 나를 어느 정도 만들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Robot Dreams

Robot Visions

by Isaac Asimov

 

아이작 아시모프 로봇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었던 나의 10대 시절. 그때는 주로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기는 했지만, 결국 소장해야겠다는 결론이 들었던 몇 권은 구매했지. 이거 말고도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전질 보유하고 있었는데 졸업 후에 학교 도서관에 기증했던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당시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란, 햇살 따스한 날에 창가에 앉아서 사과를 아삭아삭 먹으면서 아시모프 로봇 소설을 쌓아두고 읽는 것... 이었다는 거.

 

최근에 북클럽에서 테드 창의 소설을 읽으면서 SF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시모프에 대한 거론이 있었는데, 덕분에 그 오래 전의 일들이 생각났지 뭐야. 아울러, 이 책들을 꺼내보다가 '기억의 페이퍼백' 포스팅을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이야, 반갑다. 10대 시절의 나.

 

 

 

 

 

 

Things Fall Apart

by Chinua Achebe

 

Animal Farm

By George Orwell

 

심지어 Things Fall Apart 는 학교 영어 수업 교재였어... 그런데 나름 인생작 중 하나라서 당시 학기 중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 읽었던 작품이다. 덕분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원어민들을 제치고 영어 시험 성적이 늘 최상위권이었던 듯-_- 역시 세상에 덕력을 이길 덕목은 없는 거다...

 

동물농장은 95-96년도 부근에 하연찡이 선물해준 책이다. 심지어 책 뒷면에 Hayon 이라고 스티커가 붙어있음 ㅋㅋㅋ 아, 뭐죠, 우리 10대 때 주고 받은 선물이 지성미 넘치네효 ㅋㅋㅋㅋㅋㅋㅋ 이것도 엄청 낡았는데 그 노후하고 지친 분위기가 왠지 작품이랑도 잘 어울려서 계속 보유 중. 동물농장은 매끈한 새 책으로 보면 이제 어색할 것 같아...

 

 

 

 

 

 

이번 포스팅의 백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

 

심지어 한 권은 프랑스어, 두 권은 (그것도 동일한 버전의) 영어판이다. 프랑스어 버전은 내가 초등학생 때 (와우) 읽던 거고, 영어 버전 중 조금 낡은 쪽이 대학생 땐가 구매한 거고, 이거 잃어버린 줄 알고 한 권 더 사서... 그리하여 총 3권.

 

앨리스는 작품 속에서 '영국 아이가 불어를 구사하는' 상항에서 발생하는 언어 유희가 꽤 있는데, 난 애당초 프랑스어로 읽는 바람에 이 부분들에서는 각주를 열심히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아울러 존 테니엘 삽화 특유의 고전적이고도 냉소적인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이질감도 기억해.

 

 

 

 

 

 

Le Petit Prince

By Antoine de Saint-Exupery

 

이건 대체 언제 구매했더라... 만약 프랑스에서 구매했던 거라면 엄청 오래된 건데 이렇게 책이 비교적 멀쩡할 리가 없고,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굳이 이걸 샀던 기억도 없고... 아, 그런데 책의 출판사와 형식을 보니 (프랑스에서 구매한 게 확실한) 앨리스와 동일 버전이다. 세상에, 그렇다면 이 책도 최소한 20년은 됐다는 건데 ㄷㄷㄷ

 

어린 왕자야 뭐 워낙 전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데다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작품이지만, 나에게 지니는 의미는 좀 더 특별하다.

 

내가 아직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할 때, 학교에서 이 책을 오디오북 교재로 채택한 적이 있었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아직 낯선 언어로 이 작품을 처음 만났다. 잘 모르는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언뜻 들리는 언어의 실마리. 마치 청각적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가면서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오디오에 비해서 찬찬히 꼼꼼히 읽어볼 수 있는) 활자로 작품을 다시 돌아봤을 때에는 그야말로 개안(!)하는 기분이었고! 그렇게 본의 아니게 공감각적으로 작품을 대한 탓에 뇌리에 깊숙히 박혀서 이제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기억이 된, 어린 왕자.

 

 

 

 

 

 

 

같은 출판사, 같은 컬렉션 출신(?)의 어린 왕자와 앨리스! 둘 다 표지 디자인 표맷이 동일하고, 책 뒷표지를 보면 거꾸로 뒤집어서 볼 수 있는 일종의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산 비슷한 책인데 왜 앨리스만 이렇게 낡았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여튼 투명 테이프를 붙여가면서 계속 소장하고 보고 싶어했음이 느껴지는군.

 

 

 

 

... 그러고 보니, 뭔가 감개무량한 포스팅이다...

 

 

 

 

 

 

 

  

 

 

 

 

 

 

 

 

저자 : 테드 창

역자 : 김상훈

출판사 : 엘리

 

책 소개 :

단 한 권의 작품집으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 단편소설 작가 중의 한 명’이라는 명성을 얻은 테드 창의 소설집이다. 과학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상상력과 소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철학적 사유를 선사하는 이 책은 기막힌 상상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읽고 나면 엄청난 감동이 밀려오는 여덟 편의 단편을 수록했다.
천상의 시작점으로 이어지는 탑을 건설하는 고대 바빌로니아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바빌론의 탑’, 언어학자인 한 여성에게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외계인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량 생산된 골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일흔두 글자’, 수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된 수학자 이야기 ‘영으로 나누면’ 등 테드 창의 이야기들은 지적으로 도전적이고 대담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감동적인 여운을 남긴다.

 

저자 소개 :

테드 창은 1967년 뉴욕 주 포트 제퍼슨에서 중국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 대학에 입학,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학자의 세계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작가가 되려는 꿈을 품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워싱턴 주 시애틀의 컴퓨터 관련기업에서 기술관계의 매뉴얼을 쓰는 직장을 얻었고, 저명한 창작 강좌인 클라리언 워크숍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중단편들을 한 편씩 발표, '21세기 최고의 현역 단편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1990년에 발표한 데뷔 단편 「바빌론의 탑」은 '역대 최연소 수상인 동시에 데뷔작에 의한 최초의 수상'이라는 인상적인 기록을 세우며 프로들이 선정하는 네뷸러 상을 받았다. 1991년에 발표한 중편 「이해」는 『아시모프』지의 독자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1992년에는 가장 유망한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존 캠벨 Jr. 기념상을 수상했다. 이후 무려 6년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발표한 「네 인생의 이야기」는 네뷸러상과 스터전상을 수상했다. 2년 후인 2000년에 발표한 중편 「일흔두 글자」는 휴고, 스터전, 로커스, 세계 환상문학상 등 무려 다섯 개 상의 후보에 오른 후, 대체역사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드와이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1년에 발표한 중편 「지옥은 신의 부재」로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모두 휩쓸었다.문학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가로는 SF작가인 존 크롤리와 진 울프가 있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작가로는 카렌 조이 파울러와 그렉 이건을 꼽는다. 현재 테드 창은 워싱턴 주 벨뷰에서 작가 생활과 프리랜서 일을 병행하고 있다.

 

역자 소개 :

SF 및 환상문학 평론가이자 번역가이며, 강수백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공사의 그리폰북스와 열린책들의 경계소설 시리즈를 기획했고, 행복한책읽기에서 SF총서를 기획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는 로버트 홀드스톡의 『미사고의 숲』,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별을 쫓는 자』, 『드림 마스터』, 밴 다인의 『파일로 밴스의 정의』, 그렉 이건의 『쿼런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의 전쟁』, 『보르 게임』,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 『바실리스크 스테이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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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휘갈김 :

 

쓸 말이 많아서 독서일기 남기기를 여태 미뤄온 책. 아, 자꾸 이러면 '간단하게 휘갈겨서 읽은 기록을 남기자' 라는 나의 블로그 독서일기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데... 우선, 내가 일전에 페북에 먼저 올렸던 독후감 중 일부를 발췌해본다. 역시 기록은 블로그에 남겨둬야 훗날에 다시 돌아보기 좋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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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또는 신, 또는 인간

 

영화를 워낙 잘 안 챙겨봐서 '컨택트'라는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어느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 달 도서 선정 투표에서 우연히 이 책에 끌려서 투표를 했고, 또 나의 한 표가 캐스팅 보트가 되어 (ㅋㅋㅋ) 이 책이 선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도 초반에는 이 책이 영화 '컨택트' 원작인 줄은 몰랐다. 잘은 몰라도, 컨택트라면 외계인 등장하는 SF 영화일텐데,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이 과연 SF일까? 영화 각색 과정에서 뭔가 많이 달라진 걸까? 둘 다 SF가 맞기는 한 걸까?

 

SF, 그러니까 Science Fiction 이라는 개념 그대로 보면, 이 책은 (그리고 아직 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영화 또한) 과학에 근거한 허구의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미래를 배경으로 로봇들이 등장하고 기계 문명의 부상과 인류의 미래... 이런 그림에서의 SF는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이런 '전통적인' 의미의 SF로는 역시나 아이작 아시모프, 로봇 소설의 대가인 그를 예로 들 수 있겠다. 하지만 SF라는 장르 자체가 늘 '세상에 없던 내용으로 새로이 상상하여' 쓰는 소설일진대,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고 한들 아시모프의 틀을 언제까지 따라가기만 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상상 창조'라고 할 수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테드 창이 제시하는 '새로운 SF의 지평'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로봇을 소재로 하고, 미래가 등장해야만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야! 수천 수만 년 전을 배경으로 할지라도, 혹은 과학적 원리보다도 신화적 요소의 비중이 더 높을지라도 (예 : 바빌론의 탑) 이야기의 구성과 발상 자체에 과학적 상상이 녹아있는 거라면, 그 자체로 SF 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발상의 차이가 '신화' 혹은 '구전동화'와 '공상과학소설'의 구분을 지어주는 게 아닐까.

 

또 하나 재밌는 것은, 나도 10대 때 아시모프 소설을 꽤나 들이팠는데(!) 그런 나는 그의 요소 중에서 '과학'을 버리고 '글'을 취하여, 결국 기자가 되었다는 점. 테드 창은 '과학'과 '글' 두 가지를 다 잡아서 이렇게 공상과학 소설의 대가가 되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번 책은 소설이어서, 그리고 단편집이어서 매우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지난 2번의 기술 혁신 논픽션 도서들이 새롭기는 했지만, 확 와닿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이렇게 도서의 형식이 다변화된 점이 내심 좋았던 모양.

 

단편집이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른 인상을 남기지만, 그 중에서도 책의 제목이자 가장 화제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네 삶의 이야기' 정도로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결국 화자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 것을, '당신'이라고 하니까 거리감이 느껴지네. 하지만, 크게 중요한 점은 아니니까 넘어가는 걸로...

인간의 인식은 선형적이다. 시간에 얽매이며, 원인과 결과를 순차적으로 인지한다. 과학적 상상력을 더하여 과거로, 또는 미래로 시간 이동을 하는 줄거리에서조차 그 시간의 선형적 인과관계는 늘 존재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당연한 걸까?

 

이 생각에서, 이 놀라운 줄거리는 시작한다.

 

無에서 有로, 有에서 無로.
0에서 1로, 1에서 0으로.
시작에서 끝으로, 끝에서 시작으로.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원을 그리며 하나의 패턴으로 수렴한다.

 

어찌 보면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말이지만, 이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그야말로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놀라울 정도의 정교함으로 풀어내는 게, 그게 바로 이 베스트셀러 작가의 힘이려나.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과학적 상상'이 개입한다. 그냥 '이럴 수도 있지'라는 상상력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근거를 소설의 플롯을 통해서 풀어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가 SF소설계에서 인정받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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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덧붙임.

 

#1. 책 정보에서 역자 소개까지 첨부한 이유는, 저 김상훈씨가 SF 저서를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분이라서 SF 마니아들 중에서는 나름 명성이 있는, 특화된 역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번역의 호불호는 갈린다고 함.) 무조건 베스트셀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져 있지만, 작품성은 검증된' SF 작품을 읽고 싶다면 이 분이 번역한 작품들로 리스트업을 해보는 것도 아이디어.

 

#2. 북클럽 모임에서 의외였던 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책의 첫 작품인 '바빌론의 탑'을 힘겨워하고 지루해했다는 점이다. 들어보니까 이유는 '스토리를 구성하는 세계관과 법칙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서'였던 듯. 그리고 이렇게 느낀 사람일수록 이공계적 지식을 갖춘 경향이 있었다. 즉, 이공계 배경이 있는 사람은 이 '바빌론의 탑'을 비롯한 테드 창의 이야기들을 물리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고, 나처럼 인문학적으로 언어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되려 그 세계의 법칙들을 일일히 이해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였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3. 유사한 맥락에서 남편은 내가 이 책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나가자 아마도 '책의 과학적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그 표면인 스토리 위주로 보는 것 같다'는 취지의 평을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다고 나도 생각하는 바. 수학과 물리의 분야는... 나의 것이 아니야 ㅋㅋㅋ 물론, 단순한 스토리와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서, 테드 창이 꼭꼭 심어둔 '가상의 세계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면서 읽었더라면 깊이는 더 생겼겠지만, 내 눈높이에서 흐르듯이 읽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듯. 어차피 독서는, 기억은, 각자의 것이거늘.

 

#4. 해당 중편의 제목은 '네 인생의 이야기'인데, 책의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점. 우연도, 실수도 아니라 아마도 역자가 의도한 바가 있는 걸로 보인다. 미래의 딸에게 보내는 '네 인생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 모든 가상 세계의 이야기들이 곧 당신, 독자, 우리의 실제 세상의 이야기... 라는 행간의 은유가 아닐까.

 

#5. 드물게도 책과 영화와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작품이었다. 이 책이 지난 달의 도서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어떤 작품인지 모르고 있다가, 곧이어 요즘 개봉한 화제작이라는 '컨택트'의 원작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때까지만 해도 딱히 영화를 볼 생각이 없다가 책을 읽은 후에 '이 줄거리를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라는 호기심에 영화까지 보고 싶어졌으며, 결론적으로 책과 영화 둘 다 각각의 의미에서 만족스러웠다. 글과 영상이 서로 상충하지 않으면서 멋지게 보완해주는, 그러면서도 각각 독립적으로 작품성도 갖춘 케이스. 無에서 有로, 有에서 無로. 0에서 1로, 1에서 0으로. 시작에서 끝으로, 끝에서 시작으로. 이런 비선형적인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원작에서 과감하게 첨삭한 점 또한 현명한 선택이었어.

 

#6. 원작 소설은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의 영문 제목은 'Arrival' 한국어 제목은 '컨택트' 일본에서의 개봉 제목은 '메시지' (라고 했던 듯) 여튼 제목이 참 다양하고 제각각인 작품이다. 컨택트라는 제목은 이미 논란이 많았으니 이에 대한 내 개인평은 생략하고...

 

#7. 이번 독서토론 모임 때 SF 소설 마니아? 전문가? 한 분이 오셨는데, 그가 한 이야기가 유독 잊혀지지 않는다. SF 소설이란 무엇인가? 그의 말인즉슨, 로봇이나 과학기술 등 특정 소재 혹은 미래를 다루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작가가 새로운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여 그 세계만의 새로운 과학적 법칙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SF 즉 Science Fiction 이라는 것. 그리고 바로 이러한 '창조'가 SF의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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