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식당에 대한 리뷰를 잘 쓰지 않는 요즘,

꼭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던 곳이 하나 있었다.

 

홍대입구

서교초등학교 근처

프랑스 가정식 '루블랑'

 

저녁에 와인과 함께 단품 식사도 좋지만,

점심 때 나오는 정갈한 밥상도 매력적인 곳.

 

 

 

 

 

 

매일 바뀌는 요일별 스튜와 한식 밥상,

보들보들한 수비드 토시살 스테이크와

담백하고 고소한 엔초비 오일 파스타.

 

프렌치인 듯,

한정식인 듯,

미묘한 퓨전이지만

이게 그렇게 마음이 포근해.

 

아, 물론 음식들도 하나 같이 맛있다.

특별하고 유니크한 맛이라기보다는

하나하나 기본이 잘 되어 있는 그런 맛.

 

복직 전, 애들 둘 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인생의 꿀시기를 보내는 중인 ㅋㅋㅋ

행신동 주민 밍기가 홍대까지 와주어서

'내가 아끼는 맛집'이랍시고 데려갔지!

 

 

 

 

 

 

어쩌다 보니 디저트마저 프렌치...

길 건너 연남동의 카페 '모파상'

 

홍대권에서 까눌레를 직접 만들어 파는

몇 안 되는 카페라서 열심히 찾아 갔다.

 

사실 카페의 인테리어 등은 내 취향 아니고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넋이 나가지만

이렇게 여유 있는 평일 점심에라면 가야지!

 

까눌레는 만들기도 어렵고 식감도 섬세해서

찾아가는 정성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 법 :D

 

 

 

 

 

 

심지어 음료 메뉴에 '사실주의 자몽'...!

이 날은 따끈한 커피가 땡겨서 패스했지만

이것 때문에라도 필시 재방문해봐얄 듯?!

 

 

 

 

 

 

좌 루블랑, 우 모파상...

여기에 내 니트도 혹시 프렌치 앙고라?

이 날은 정말 프렌치 3단 콤보였었나!

 

일본 여행용으로 주문했던 아이템인데

배송 지연으로 막상 여행 때는 못 입음;

절묘하게도 출국일에 택배가 도착했다;

아침 비행기라 이미 공항으로 출발했는데;

 

내가 여행 직전에 급주문한 것도 아니고

한 열흘은 미리 구매했는데 이러기 있냐...

여행이 아니라면 굳이 사지 않았을텐데...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진은 잘 나오는군;;;

그러나 앙고라답게 하루종일 털을 뿜뿜;

어우야, 너 일단 드라이 한번 다녀와라-_-

 

 

 

 

이렇게 기분 좋게 다녀온 루블랑에는

사실 나만의 기분 좋은 기억들이 있다.

 

 

 

 

 

 

첫 방문은 별 목적이 없던 어느 저녁.

방문 예정이 없어서 카메라도 없던 날.

 

언젠가부터 한번은 가보고 싶던 곳이라

그냥 그렇게 편안하게 털레털레 찾아갔다.

 

사람 많고, 소음 많은 홍대 동네이지만

서교초등학교 뒷켠에 있는 이 지하 식당은

휑하지는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갑갑하지는 않을 만큼 아늑했다.

 

 

 

 

 

 

만세-

 

 

 

 

 

 

첫 방문이니까 고민 없이 2인 세트로-

 

 

 

 

 

 

편한 날이니까 식전주로 브뤼 샴페인 한잔씩-

 

 

 

 

 

 

도란도란하게 바 테이블 구석을 차지하고-

 

 

 

 

 

 

 

 

 

 

사실 -

첫 방문 때는 음식에 감흥이 크지는 않았다.

 

시그니처라는 수비드 삼겹살은

수비드인데도 불구하고, 삼겹이어서 그런지,

내 입에는 좀 느끼하고 무거워서 그냥그냥.

삼겹살과 파스타의 간도 약간 센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기대했던 크렘 브륄레는

푸아그라가 들어가서... 미묘한 단짠의 맛...

 

그래서 우리는

편안하고 아늑한데, 음식은 딱 취향은 아닌,

그런 집으로 루블랑을 분류해두기로 했다.

 

 

 

 

그러다가 다시금 방문하게 된 계기는 -

점심 때만 나오는 정식... 때문이었다.

 

갑자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월요일,

'아, 이대로 몸살 걸리겠는데' 생각이 들던 날.

 

홍대 근처에서 외근을 마치고 이동하다가

문득, 여기에서 점심을 먹어봐야겠다 싶었지.

 

새벽부터 나와서 일하다가 몸상태도 별론데

점심마저 아무데나 들어가서 때우기는 싫었고

나 자신을 잠시라도 좀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

 

 

 

 

 

 

루블랑의 점심 메뉴는 이렇게 나온다.

 

한국식 밥상 차림 형식에

프랑스식 스튜와 가니쉬를 더한

프랑스 정식 시리즈가 대표적이고

 

수비드 토시살 스테이크 정식이

파스타, 혹은 스튜와 스테이크 세트.

그 외 시그니처 매뉴 단품도 가능하다.

 

저녁에 비해서

양도, 가격도,

한결 부담 없는 구성.

 

프랑스 정식은 자그마치

8,800원이라는 착한 가격!

 

 

 

 

 

 

이 날은 월요일이었기에

소고기 블랑케트 정식으로.

 

크리미 화이트 소스 소고기 스튜에

밥과 반찬, 샐러드와 빵이 나온다네.

 

너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양과

봉긋봉긋 정갈하게 담은 모양이 정겨워.

 

 

 

 

 

 

무엇보다도

대학원 수업에 과제, 회사 업무 등에 치이고

몸살의 예감에 몸도 으슬으슬 춥던 이 날,

 

따근하고 부드럽고 담백한

이 스튜 한 입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혼자 와도 전혀 낯설지 않은 분위기에

조용히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바 테이블.

 

정말이지 이 춥고 피곤한 날,

나에게 딱 필요한 것들이었다.

 

 

 

 

 

 

고마워요.

짧은 식사 시간에 불과했지만

잠시나마 몸과 마음이 쉬어 갑니다.

 

... 그러나 결국 몸살은 걸렸다는 후문...

(사실주의 자몽의 스토리 전개 ㅋㅋㅋ)

 

 

 

 

 

 

루블랑

Loup Blanc

 

하얀 늑대

 

고독한 흰 늑대... 뭐 그런 건가.

뜻은 약간 거창한 것 같기도 하지만;

따스하게 기억되는, 나만의 단골집.

 

개인적으로 첫 방문은 가능하다면

저녁보다는 점심을 추천해보고 싶다.

 

한국식 밥상의 정갈함,

프랑스식 스튜의 포근함,

나즈막한 조명의 아늑함,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행복한 맛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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