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913
한남동에서 식사하고,
이태원 길거리에서 꽃을 선물받고,
경리단길 테라스석에서 이야기를 나눈,
초가을밤.
여전히 '말로 해야 알아듣는' 남자 생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꽃 사줘"라고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꽃 선물 받는 게 참 기분 좋아.
금방 시들기 때문에 조금 사치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온전한 낭만처럼 느껴져.
선물받은 꽃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야.
또박또박 조곤조곤
평소에 늘상 이야기를 해두어서 그런지
이제는 길거리를 걷다가 내가 꽃 노점상 앞에서
잠시라도 눈길이 머무르거나 혹은 발길이 느려지면
웃으면서 "사줄까?" 라는 말 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꽃'이란 여전히 낯선 분야여서
본인의 안목으로 온전히 골라서 선물을 해줄 자신은 없단다.
나도,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차피 결혼 후에 한 집에 같이 살고 있고
그가 꽃다발을 짠- 하고 들고 나타날 상황도 그닥 없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없다는데 하라고 밀어대고 싶지도 않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나 또한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 예컨대 전자기기나 음향 -
상대방의 기대치에 맞춰야 한다면, 꽤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다만, 내가 기분이 좋은 이유는,
내가 이렇게 이유없는 꽃다발에 행복해하는 걸 알고 있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생각하건대 그도 기분이 좋은 이유는,
'꽃을 선물해서 내 사람이 기분 좋은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의 마음을 내가 왜곡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이겠지.
좋은 것은 좋다, 좋다, 아낌 없이 재차 말을 해주기 때문이겠지.
길에서 산 5천원짜리 꽃다발 하나로
우리의 관계가 지닌 수많은 멋진 점들을
이렇게 다시금 미소 지으며 돌아볼 수 있다니,
그렇다면
꽃선물은 사치가 아니라
실로 가장 가성비 좋은 선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고마워요.
그나저나 이 사진은 페북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나서
'가방 사줘서 고맙다'라는 소리로 오해를 좀 산 듯도;
고마움의 대상은 꽃,
그리고 이 날 함께 보낸 시간입니다.
(하지만 클러치가 예쁜 것도 사실이지! by Michaella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