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결혼 이후로 쭈욱,
연초에 동해 여행을 다녀오고 있네.
이번에도 다녀왔는데,
이전 여행들과는 다르게 기억되는 여행이었다.
이 남자는,
여행을 생각하고 떠나는 스타일이 나와는 다르다.
물론 내가 추진하는 여행도 즐거이 동참하곤 하지만
본디 본인은 아~~~무 생각이나 계획 없이 떠나서,
숙소도 아~무 곳이나 잡아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바다 특히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바다를 바라보며,
모든 신경이 이완되는 걸 즐기는... 여백의 여행자.
사전 계획형 인간인 나도
이런 그와 함께 살면서 (내깐에는) 많이 느긋해졌지만
그가 생각하는 만큼의 nothingness 는 아니었던 듯...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제안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일출만 볼 생각으로 다녀오자고.
숙소 욕심도, 맛집 호기심도 없이, 그냥 바다만 보자고.
숙소도 복잡하게 하지 말고 예산 상한선 내에서 적당히.
어차피 바다만 볼 생각이니니까 깨끗하게 잠만 잘 곳으로.
그렇게, 모든 정신을 툭- 놓고 올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아무런 부담 없이, 바다만 즐긴다'는 생각에
숙소도 복잡하게 안 알아보고 소셜 적당히 뒤져서 골랐다.
시설이 세련되지는 않더라도 깔끔하고 가격도 저렴한 곳으로.
가격은 10만원 미만 선호, 바다 뷰가 좋으면 13-4만원까지 콜.
그렇게 걸린 곳이 - 고성 봉포해변의 코스트하우스.
내 본디 어디 놀러갈 때에 숙소 정보 검색을 꽤나 해보는데
이렇게 대강 스윽 보고 고민 없이 선택해보기는 처음이었네;
고성 봉포 해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건물의 4층 방.
바로 침대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이 바다 풍경,
이것 때문에 망설임 없이 코스트하우스를 선택했다.
바다가 보이고, 바다가 들린다.
생각지도 못한 점이었는데 윗창문을 살짝 열어두면
방 안에서 쉬는 동안 내내 파도소리가 쏴- 들려온다.
... 물론 그만큼 밤에 해변의 폭죽 소리도 잘 들리지만...
(그 저급한 마트표 폭죽들은 왜 그리 터뜨려대는지들?)
어딜 가야 한다는 생각도,
뭘 해야 한다는 목표의식도,
전혀 없어서 하느작거리면서 바닷가 산책.
2월에다가 바닷바람도 불어서 꽤 쌀쌀했는데
이 또한 '와하하하, 춥구나~" 이런 식이었다.
이건 어찌 보면,
'자신감' 이다.
아무런 계획도, 특별한 일도 없을지라도,
상대방이 이 시간을 즐기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상대방도 안다는 것을 아는,
친근함과 편안함에 대한 자신감.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일정과 동선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만큼은 서로의 교집합을 만들어냈다는 거다.
그나저나 나는 금주 기간이어서 음료수 마실 거였는데,
남편군의 맥주 기분에 동조해주기 위해서 무알콜 맥주;
제법 맥주의 맛을 비슷하게 모방해낸 점이 재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시 마시고 싶지는 않고... 중얼...
바다에 눈도장도 찍었으니까,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해질 때까지 침대에서 음악 듣고 책 보면서 뒹굴뒹굴...
'윗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더불어서 또 하나,
생각지도 못했던 장점은... 침대가 무지 포근하다는 것!
사실 생긴 건 다소 촌스럽고 허름한 모텔풍이었는데,
들어앉아서 이불을 덮으면 놀랍도록 폭신하고 따스해!
이불이 엄청 고급인 것도, 온수매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온돌 바닥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달이 된달까.
덕분에,
귀에는 시원하게 파도소리와
몸에는 따뜻하게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스르륵 기분 좋은 낮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여준 일출.
추운 바닷가를 서성이면서 기다리는 기분도 나쁘지 않더라.
그러나 우리 방 창문에서도 이렇게나 잘 보인다는 사실.
그래도 역시 나가서 찬 공기 맡으면서 해를 직접 봤기에
방으로 돌아와서도 일출 분위기가 났던 게 아닐까 싶다.
겨울 바다의 아침.
일출을 봤다, 는 자그마한 성취감과 함께 모닝 커피를 :D
놀러갈 때 늘 챙겨가는 드립백 커피, 방울 토마토, 요거트.
소박한 듯 하면서도 알차게 챙겨온 것 같아서 뿌듯해진다.
'그냥 떠난다'고 하면서도 결국 이것저것 챙겨와버린 나님.
저녁, 그리고 아침 식사는 챙겨온 것들로 대강 먹었으니
서울로 돌아가기 전의 점심 식사는 두부집에서 즐깁시다.
재작년에 첫 방문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속초 대청마루.
그때는 손두부와 비지를, 이번에는 두부 전골을 시켰는데,
이 집의 매력은 역시나 손두부 쪽에 있다는 게 내 결론임.
그래도 전골도 자극적이지 않고 개운한 게 맛있긴 했지만.
호록-
그러고 서울로 향하는 길에 나섰는데... 이런 차막힘...
차도 막히고, 날씨도 쌀쌀하고, 왠지 핫초코가 땡기는데
속초 외곽의 도로사에서 좀처럼 카페가 아니 보이는 거다.
정말 기적과 같이 눈에 들어와준, 이디야 커피 고마워요...
저 민트 핫초코 덕분에 막히는 길도 헤쳐나갈 수 있었다오.
돌아오는 길에는 눈도 펑펑 날려서, 이런 풍경.
겨울바다 일출 여행 자체는 느긋하고 편안했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이 길고 느리고 긴장되었네.
여튼,
나에게는 새로운 유형의 여행이었던,
2016년 2월, 고성 속초에서의 1박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