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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뭐라도 되겠지 by 김중혁

Posted by 배자몽 독서의기록 : 2017. 3. 30. 15:00

 

 

 

 

 

 

 

저자 : 김중혁

출판사 : 마음산책

 

책 소개 :

이 책은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때로는 진지한 책, 술렁술렁 페이지가 넘어가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잠시 멈추게 되는 책, 다 읽고 나면 인생이 즐거워지는 책을 꿈꾸던 저자의 산문 56편과 함께 직접 그린 그림을 엮은 것이다. 저자만의 취향이 담긴 영화와 책, 방송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일상의 소소한 단상, 예술과 사회에 대한 시각까지 재미있으면서도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고 있다. 이와 함께 구구절절 사연 티셔츠, 이기적인 보일러, 수줍은 가로등, 자동차 문자게시판 등 엉뚱한 발명품을 소개하는 카툰을 수록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유머, 발상의 전환, 따뜻한 감성 등 저자의 글이 가진 진정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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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휘갈김 :

 

잉여의 산문, 이라고 하겠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게 되는.

 

선유도 책방에서 남편이 #잉여 해시태그를 보고 블라인드북으로 고른 책인데, 실로 그와 매우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반면, 마력의 소설, 비틀어진 고뇌, 이따위 해시태그를 고른 나에게는 이외수의 '들개'가 걸렸지...)

 

나는 엄청 부지런하거나 열정적인 축에까지는 못 드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잉여롭지도 못한' (어쩌면 흔한) 현대인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상에 여유가 있을 때, 시간에 여백이 생겼을 때마다 '이것 봐, 내가 이만큼의 여유를 여백을 두었어' 라고 인지하는 것만 봐도, 사실 그렇다. 정말 빈 공간을 둘 줄 아는 인간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다면, 굳이 그렇게 새삼스럽게 굴지도 않겠지.

 

그런데 김중혁 이 작가는 마치 타고난 것 마냥 잉여의 기운을 마구 흘려낸다. (물론, 그의 인생 이야기를 군데군데 들어보면 그라고 늘 그랬던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딱히 정보가 넘쳐나는 것도,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재미있는 일상 블로그를 정주행하듯이 스르륵 읽어내려가게 된다. 딱 그거네. 종이 페이지에 옮겨놓은 개인 블로그 같다. 툭툭 던진 듯한 드립질이 난무하는.

 

심지어 두서 없는 주제들로 짧은 산문 모듬이 이어지다가, 난데없이 일러스트나 만화, 혹은 '뻥'으로만 이루어진 개그 페이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책의 표지 그림을 포함해서, 등장하는 모든 그림들은 디자인 경력'도' 있는 그가 직접 그린 작품들!) 그 중 상당수는 함축적인 위트, 이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에 따른 '헛소리'들이다.

 

이거 뭐, 블라인드북의 해시태그가 애당초 잉여, 농담, 쓸데없는 것이었으니 토를 달 수도 없겠는데? 라는 기분으로 주말에 소파 혹은 침대에 누워서 책을 팔랑팔랑 넘기던 차에 - 예고도 없이, 힘주지도 않고, 불쑥 나타났다. 분명히 내 기억에 새겨질 문장들이 말이다.

 

아, 글쎄,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본 바로는 이 작가가 그렇더라니까. 자, 이제부터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며 깊이있고 위트있는.. 아무튼 내가 엄청 공들여서 배치한 문장이 등장할 거야! 라는 그런 예고도 없이... 그렇다고 '훗, 으씩' 하는 '쿨한 척'도 없다. 진짜 헐렁하게 그렇게, 빈 종이 위에 연필로 선을 직직 긋듯이 말하고 글을 쓴다.

 

하지만 잰 체 하지 않아도 그의 어수선하고 느슨한 글에는 분명 군데군데 통찰력이 있었고, 이런 면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폄하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비스듬히 누워서 피식 웃으면서 무성의하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어느 부분에 도달해서는 몇 번이고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면이 있더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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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췌 :

 

1971년생이며 지방의 소도시 출신이었던 우리들에게 초등학교 시절은 흙과 플라스틱이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우리의 주 무대는 흙이었다. 운동장의 흙에다 운동화 뒤꿈치로 구멍을 낸 후 구슬치기를 했고, 운동화를 세워 운동장에다 선을 그은 다음 '강 건너기'를 했으며, 흙 위에서 슬라이딩하며 축구를 했고, 커다란 선을 그어놓은 다음 병뚜껑으로 땅따먹기를 햇다. 그러나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넋을 잃고 플라스틱을 바라보곤 했다. 문구점에 가득 쌓인 프라모델을 보며 정신을 잃었고, 구멍가게 진열장에 쌓인 조잡한 플라스틱 장난감에도 침을 흘렸다. 우리는 모두 나만의 장난감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흙은 소유할 수 없다. 흙은 나눠 가지는 것이고 함께 서있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알게 된 후부터 소유의 개념이 생겨났다. 나와 너의 구분이 생겨났다. 절대 빌려줄 수 없는 나만의 물건이 생겼으며 '나도 꼭 갖고 싶은' 너의 물건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기에 '재능'이란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군가의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에 대한 배려 없이 무작정 흐르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다음에 생겨나는 것 같다. 그래, 버티다 보면 재능도 생기고, 뭐라도 되겠지. (저자의 말 : 뭐라도 되겠지. 이 문장을 제목으로 하자는 의견을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좋은 뜻일까? 긍정이긴 하지만, 때로는 체념처럼 들리지 않을까? 하긴 체념이어도 상관없다. 작은 체념이 들어있는 긍정이야말로 튼튼한 긍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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