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과 쿠로가와 료칸 숙박 예약을 완료하고 나면, 후쿠오카에서 적당한 호텔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거슨 매우 크나큰 오산이었다. 2월 초 여행을 거의 2달이나 앞둔 시점에도 후쿠오카에 '마음에 드는 가격대에, 여자 4명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 물론 아예 예산을 확 올려버리면 가능하지만, 나름 추가 금액 거의 없이 정해진 여행계 금액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그리고 어차피 이틀 간의 숙박 중에서도 구로가와 료칸에서의 숙박이 더 중점이기 때문에 후쿠오카 숙박에는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은 탓도 있어서, 이래저래 제약이 많았다.
4인 동시 숙박 가능한 방은 애당초 갯수가 적은 데다가, 저렴한 호텔 2인실을 2개 예약하려고 해도 안 되고, 정말이지 믿고 꿍쳐둔(?) 최후의 방편이었던 토요코인마저 싸그리 만실인 걸 보고 (특정 지점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카타 지역의 모든 토요코인이 그랬음...) 이만하면 호텔은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라는 판단과 함께 -
에어비앤비(AirBnB)로 눈을 돌렸다.
사실 나는 에어비앤비를 진작에 한번 체험해보고 싶었는데, 여러 명이 움직이는 여행이고 잠자리를 좀 타는 멤버도 있어서, 섣불리 하지는 말자는 생각에 처음에는 옵션에서 제외했었다. 그러나, 뭐 어떡해. 숙소를 잡기는 잡아야겠고, 후쿠오카의 웬만한 호텔은 종류별로 다 들여다봐도 답이 없는걸.
그런데, 선택지에서 밀려서 결정한 이 에어비앤비 숙소가 우리의 후쿠오카 여행의 백미이자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가 될 줄이야. 게다가 의도치도 않게 경비 절약마저 해주었으니... 후후후.
에어비앤비는 사이트가 워낙 느려서 모바일 앱으로 보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원하는 지역을 치고서 방의 비주얼을 보고 선택해도 되고, 지도상에 배열시켜서 가장 좋은 위치 기준으로 선택해도 된다. 나는 일단 권역을 우리가 구로가와로 갈 때 버스를 탈 하카타 버스 터미널을 중심으로 걸어서 15분 거리 이내로 잡고 (그 반경 이내에서는 아주 역 바로 옆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는 식) 그 다음에 가격 (어쨌든 총액이 호텔에 쓰려던 금액을 넘어서면 곤란하니까) 그 후에 시설 (여자 넷이서 자기에 깔끔하고, 샤워실 화장실 등 시설이 적합한가) 이런 순서로 고려해서 골랐지.
그리하여 최종 예약한 방은 다음과 같다 :
하카타역 남단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스트 Arisa 님의 집. 위치도 저만하면 걸을 만 하고, 와이파이 샤워시설 등 모든 게 다 갖춰져 있고, 가격도 예산 내에 있고 (인당 가격 기준이며, 인원에 따라 추가 금액 있다) 침대도 3개여서 여자 넷이서 자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이상 바라는 바도 없고, 후쿠오카 호텔 만실에 하도 시달려서, 이쯤에서 바로 예약을 감행해버렸지... 아마도 룸의 실제 비주얼은 사진에 비해서는 다소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하고.
이런 식으로 숙소를 지도 정렬을 시키면, 내 조건에 맞는 얼마짜리 숙소가 어디쯤에 위치해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물론, 위치는 가까운데 해당 건물 주변이 어둑하다거나,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점들은 대개 기존 이용자들의 후기를 통해서 보완하는 게 좋다.
나도 예약 당시에 Arisa의 집보다 하카타역에 더 가깝고, 가격도 엇비슷하거나 살짝 더 저렴하며, 침대 갯수도 넉넉한 곳을 한 군데 봤는데... 거기는 에어비앤비에 등록한지 얼마 안 되는 곳이었고 따라서 고객 후기가 거의 없었다. 물론 막상 가보면 대박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과 여럿이 여행 가는데 무리수를 두고 싶지는 않아서, 거리는 역에서 다소 더 멀지만 이미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Arisa네로 결정했던 거지.
예약 및 완불을 하고 나면, 예약자의 이메일로 주소, 주의사항, 숙소 와이파이 번호 그리고 역에서 숙소까지 찾아오는 자세한 한국어 지도 등이 송부되어 온다. 꼭 잊지 말고 프린트해갈 것! 이 사전 자료들과 구글맵만 있으면 문제 없어!
우리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우와, 이거 사진이랑 똑같잖아? 각도발 조명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정직한 사진이었다니?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진과 실물의 일치에 감탄부터 나왔다. 이렇게 채광 좋고 침대 넉넉하고 우리끼리 오붓하게 지내기 좋은 방이 18만원 밖에 안 하다니! 호텔은 3-4인실 찾기가 힘들어서 둘둘씩 나뉘어서 자거나 훨씬 더 비싼 돈을 줬어야 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게다가 청소 상태도 흠잡을 데가 없어!
특히나 나는 일일히 찾아보고 비교해보고 알아보고 예약하고 자료 출력까지 한 입장이어서 그런지... 내가 예상한 것과 동일하거나 훨씬 더 좋은 숙소를 확인하고서 엄청 신나고 뿌듯해했다. 와, 내가 해냈어, 뭐 이런 느낌? ㅎㅎㅎ
이렇게 스튜디오 타입의 아파트에 수퍼싱글? 퀸? 사이즈의 침대가 2개 놓여 있고 부엌 쪽에 좀 낮은 높이의 추가 매트리스가 놓여 있다. 침대당 2명으로 쳐서 수용 가능 인원은 최대한 6명까지.
그래서 우리는 사다리타기를 통해서 진 사람 둘이서 아래 침대에서 같이 자고, 이긴 사람 둘은 단독 침대를 쓰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추가 침대는 접히는 타입의 매트리스여서 중간이 다소 움푹하고 이 때문에 허리가 좀 불편하게 되어 있더라고. 잠자리 안 타는 사람이 혼자 쓰기에는 상관 없겠지만, 둘이서 자기에는 무리가 있는 편.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스페어 베드를 그냥 버리고, 정규 침대에 2명씩 나눠서 자면 되잖아? ㅋㅋㅋ 아니, 그런 수가 있었네? 천잰데? 우리 사다리타기는 그렇게 열심히 왜 한 거임? ㅋㅋㅋㅋㅋㅋㅋ 애당초 정규 침대 2개만 쓴다고 생각했으면 간단했을 일을, 스페어 베드가 있으니까 있는 침대는 다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만...
여튼, 한바탕 삽질을 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침대 2개로 나뉘어서 편하게 잘 잤다는 뭐 그런 후문. 침대 머리맡에 충전하는 곳도 있어서 여러 모로 편했다.
사실, 침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마음에 걸린 건 역시나 일본 집 특유의 냉기. 온돌바닥을 고안하신 우리 조상님들 다시 한번 존경합니다. 후쿠오카는 서울에 비해서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라디에이터 하나로는 방을 따스하게 유지하기에 무리였다.
다들 따스한 밍크 수면 잠옷랑 수면 양말을 챙겨오긴 했지만, 그래도 추위를 제법 타는 사람이 둘 있어서 걱정을 하긴 했는데, 뭐 다행히도 감기 걸리거나 하지는 않았네. 여튼 겨울에 여행을 가는 경우에는 이런 난방 요소를 고려하기는 해야 할 듯 싶다. 호텔의 난방과는 다른, 일반 가정 난방인데 이게 보온력이 꽤 약하다는 것?
후쿠오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오는 곳이라서, 이렇게 주의사항도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써있었따. 물론 경찰이니 구급차니 소방서니 부를 일은 안 생겼지만, 이렇게 긴급 대처가 잘 되어 있는 걸 확인하니 조큰영...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건 바로 욕실과 화장실! 두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여러 사람이 묵으면서 쓰기 편하다. 특히 아침에 바쁘게 나갈 준비할 때에는 이런 분할형 구조가 최고! (물론 우리는 구로가와 가서 어차피 온천욕 할 거라면서 아침에 세수와 양치만 겨우 하고 나섰지만...?)
세면대가 있는 이 공간에는 세탁기, 그리고 인당 2개씩의 수건이 준비된 바구니가 있다. 안에서 누가 샤워를 하고 있어도, 세수나 양치, 또는 빨래가 가능한 구조여서 매우 좋았지. 심지어 세면대에는 치약과 면봉 등 필요한 물건들이 촘촘하게 다 준비되어 있어서 간단한 세안제와 각자 칫솔 정도만 챙겨가면 될 정도.
욕실에는 자그마치 반신욕 욕조까지 있다! 공간이 자그마하지만 정말 이렇게 알차게 빼곡하게 짜여 있다니! 공간이 잘 나뉘어 있는 데다가 샤워실은 이렇게 자그마해서 씻을 때에도 오한 들지 않고 금방 사우나 마냥 따끈해지는 점도 굳굳. 게다가 샴푸 린스는 츠바키, 바디워시는 도브, 죄다 정품으로 다 구비되어 있었어... 난 이 점은 혹시 몰라서 샴푸 린스 정품으로 들고 갔는데, 부질 없었네?
여러분, 다들 쾌변하고 행복해지세여...
숙소에서 한숨 돌리고 이제 캐널시티로 향하는 길. 11층이었던 우리 숙소 현관에서 둘러본 주변은 이렇게 생겼다. 번화가 한가운데에 있는 호텔이 아니라, 정말 현지인들이 사는 주거지역 한가운데에 있는 자그마한 아파트. 게다가 나오자마자 바로 초등학교가 하나 있어서 괜히 마음이 더 놓이고 그러네. 물론 주거 지역이니만큼 오밤중의 음악, 그리고 층간소음 등에는 더욱 주의해야겠지.
그렇게 하루를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베란다에서 바라본 후쿠오카의 일상 풍경.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 곳에서 '살아보라'고 하는 에어비앤비의 광고 카피들이 유독 와닿는 순간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담아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열렬한 숙박 후기를 올렸더랬지. 후후후. 고마워요 AirBnB. 사랑해요 Arisa. 비록 얼굴도 본 적이 없이 이메일과 메시지로만 대화했지만, 당신은 우리의 후쿠오카 추억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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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에어비앤비라는 시스템 자체가 각 사람이 보유한 집을 등록해서 운영하는 식이라서, 어느 도시에서 어느 호스트의 집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만족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이런 예측불허 복불복이야말로 에어비앤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겠지.
우리의 숙소 선택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
(1) 후쿠오카라는 도시의 특성
숙박비가 비싸며 인당 차지를 철저하게 하는 일본이기 때문에, 호텔보다 이런 민박형(?)의 이득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나 우리처럼 친구 4명, 혹은 아이가 딸린 가족형의 일행이라면 더더욱.
(2) 호스트의 신용도를 중시했다
기복이 상당한 에에비앤비에서 좋은 평가를 이미 많이 받은 호스트의 존재는 소중하다. 나는 보다 역에서 가까운 위치나 보다 저렴한 가격 등의 장점을 포기하고서라도 평가가 좋은 호스트를 중시했는데 이것 또한 성공 요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 호스트인 Arisa는 숙소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고 에어비앤비에 등록한지도 좀 돼서, 고객 대응 시스템 등이 효율적이라는 느낌 또한 받았다.
(3) 방의 비주얼보다 기능 위주로 판단
카페트나 액자 등 인테리어 아이템들이 있으면 방의 사진 비주얼이 꽤나 그럴싸한데, 그런 외형보다는 침대가 몇 개인가, 와이파이가 잘 되는가, 수건이 제공되는가, 등등 기능 위주로 판단했던 것 또한 적중. 물론 우리 숙소는 여기에 덤으로 침대와 쿠션의 색감도 산뜻하고 채광도 좋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부가적인 요소고, 실제로는 하룻밤을 편안하게 잘 쉬고 잘 수 있는가... 이게 중요한 거니까.
여튼, 에어비앤비는 여전히 복불복의 세계지만 (그래서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남편은 여전히 좀 탐탁치 않아 함 ㅋㅋㅋ) 이렇게 첫 체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버렸으니, 다음에도 친구들과 도심지로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난 그때는 보다 손쉽게 에어비앤비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
피쓰-